상위 문서 : UMG
카야 UMG 시리즈 또는 자소크-이렘나 전쟁은 5100년에 시작된 카야의 사트 연재 시리즈이다.
+ 자소크-이렘나 전쟁 Fiun die Zasoque-Iremna Sra k'Iremna-ke'Sarsauk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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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_그림_설명}}} | ||
날짜 | ||
5104년 2월 5일 ~ 5125년 8월 7일 | ||
장소 | ||
자소크 철학단 동부 디 주, 토니겔로트 주, 키미아 주 | ||
원인 | ||
시메타시스의 UMG 차지를 위한 전쟁 사주 이렘나의 자소크포비아 | ||
교전국 | 자소크 철학단 | 이렘나-시메타시스 |
자소크 철학단 자텐다 황금전단[3] |
이렘나 철랑대 - 네라다 지방 - 셰헤카사 제도 자소크 맹세기사단[4] | |
지원 세력 | 아르토이트 제국 -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 셰스카테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
시메타시스 |
상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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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베시 엘라다 오마 13세[5] 바르테미스 아들 크라우치 2세[6] 발레디스 크론트 엔퇴 키녹사르 94세[7] 펠레마 사르닉셔스 헤르네디아 21세[8] 멕틴 선드레이 케이턴 모르고스 25세[9] |
엘칸 비스나힐카페제흐†[10] 라나가트 세르챠하†[11] 키라야 사헤사카할누르 † [12] 카시에 에힐기나페 † [13] 제르모니스 온토사 비코니움 녹실드 46세[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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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3,662,500명 자텐다 황금전단 5,150명 아르토이트 제국 24,000명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 510명 셰스카테 6,000명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362,270명 총 3,060,430명 |
721,750명 자소크 맹세기사단 1,425,530명 총 1,847,280명 |
피해 규모 | 자소크 철학단 사망자 989,246명 부상자 1,430,905명 자텐다 황금전단 사망자 239명 부상자 722명 아르토이트 제국 사망자 2,719명 부상자 5,543명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 사망자 7명 부상자 21명 셰스카테 사망자 163명 부상자 407명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사망자 19,227명 부상자 43,156명 총 사망자 1,011,601명 총 부상자 1,480,754명 |
이렘나 철랑대 사망자 241,254명 부상자 315,722명 자소크 맹세기사단 사망자 355,545명 부상자 679,090명 총 사망자 596,799명 총 부상자 994,812명 |
민간인 사상자 |
715,500명 희생 1,176,470명 실종 |
6,423명 희생 1,795명 실종 |
결과 | ||
자소크 철학단의 승리 | ||
영향 | ||
자소크 동부 지역의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 이렘나 철랑대의 국제적 고립 시메타시스의 UMG 장악 자텐다 황금전단의 경제적 황금기 이렘나 철랑대의 생활수준 향상 포젤리무스 조약으로 인한 이렘나 철랑대 규제 |
개요
자소크-이렘나 전쟁은 5104년 2월 5일에 발생한 자소크 철학단과 이렘나 철랑대의 전쟁이다.
전쟁 배경
갑작스럽게 일어난 전쟁이었지만, 그 배경에는 국가간의 복잡한 배경이 있었다. 시메타시스는 이러한 국가의 상태를 적절히 활용하여 대리전을 일으켰다.
억지스러운 명분을 만들어낸 자소크포비아
이렘나 철랑대는 4427년 자소크 철학단의 아미르비아 탐험대와 조우한 이후 자소크 철학단에 대한 공포가 국가 전체에 서려있는 상태였다. 자소크 철학단에 대한 공포의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아미르비아 탐험대가 가진 자소크의 우월한 기술력이 미개했던 이렘나 철랑대에게 공포스럽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소크 철학단의 북메디아 역사문화철사인 플게뢰그 로더여[15]는 이렇게 말한다. 이렘나에게 있어서 자소크란, 그저 자소크 철학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렘나의 전통을 위협하는 초월적인 문명의 존재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렘나가 적대하는 것은 자소크 철학단이라기보다 자소크라는 이름의 공포라는 것이다.
이후 700년동안 주적[16]을 자소크 철학단으로 규정하였을 정도였으며, 자소크와 평화를 바라자는 단어를 꺼내면 암살당할 정도로 자소크 철학단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였다.
4647년의 아마자쿠라 혁명의 무리한 개입과 4985년의 자소크인 납치를 동반한 국경 폐쇄 또한 자소크 철학단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자소크 철학단에 대한 공포는 이렘나 내부에서 자소크 체제의 파멸을 부르짖었고, 언젠가는 예방적인 전쟁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국가적 의식을 낳게 되었다.[17]
시메타시스는 이렘나 철랑대의 우호국이자, 대 탄티샤 교역 창구로써 이렘나 철랑대의 자소크포비아를 부추겼고,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5100년대 주전적 여론이 이렘나 철랑대의 주류로 자리잡게 된다. 시메타시스는 자소크 철학단과 군사 기술적인 면에서 동등하거나 열등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우월하고 다른 면에서 미개한 이렘나 철랑대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렘나의 경제 상황
두 역재로 인한 국토 황폐화와 남극해 무력시위 개입의 실패는 이렘나 철랑대에 인적, 물적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이렘나 철랑대 전체 인구의 20% 가량이 사망하고, 전체세수의 65%가 감소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앙둔 제국의 산업단지는 앙둔 제국의 패전으로 인해 타격을 입었다.
이렘나 철랑대는 붕괴의 위기에 놓여있었으나, 이 상황을 지켜보던 시메타시스가 구호금을 보내게 된다. 시메타시스의 불법적인 사업을 통해 얻어진 위험한 자금[18]들은 이렘나 철랑대에 흘러들어갔으며, 이렘나 철랑대의 경제는 급속도로 복구된다. 시메타시스는 도움의 대가로, 자소크 철학단에 대한 전쟁을 사주하였다.
UMG의 특수한 지위
UMG는 투타여르 데 자소크 북부에 있는 평화구역으로, 자소크 철학단과 시메타시스가 체결한 4164년 종전 계약의 영향으로 세워진 공동정부체계이다. 이 지역은 자소크와 시메타시스의 공동 관리를 받으며, 군대가 주둔할 수 없다. 그러나 알게모르게 양국은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장을 시도하였으며, 시메타시스는 자신들의 국토 중간에 타국과의 공동지역이 있는 것을 UMG의 설립시기부터 좋지 못하게 여겨왔다.
현재, 시메타시스는 국토 연결 및 자소크 철학단의 투타여르 데 자소크 북부 영향력 감소를 목적으로 UMG를 차지하려고 한다. 만약, 자소크 철학단이 커다란 전쟁에 빠진다면 이 지역을 접수하기는 쉬울 것이라 여겨진다.
전개 및 뉴스
갑작스러운 전쟁의 시작
이렘나 철랑대의 경제 상황에 대한 보고
5101년 1월 6일 카나 요원[19] RN-CQ41이 이렘나의 재정 상태에 대해 보고했다. 보고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렘나 세수의 17%를 차지하던 네라다 지방의 인구 감소율은 45%로, 혼란으로 인해 지방 세수가 71% 감소하였다.
- 이렘나 세수의 32%를 차지하던 세셸브 지방은 남극해 전쟁에서 앙둔 제국 이 패배한 여파로 주북메디아 산업단지가 위축되어 지방 세수가 55% 감소하였다.
- 이렘나 세수의 15%를 차지하던 셰헤카사 제도는 흉내이리 반란 이후 이렘나 철랑대 본국과의 마찰로 인해 현재까지 징수를 거부하고 있다.
- 이외의 피해를 도합하여 계산하였을 때, 이렘나의 전체 세수는 65%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5202년 초에 국경을 개방하려고 한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고 예상된다.
당시 이렘나 철랑대의 경제 규모는 아마야스 자치주의 절반 미만인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지만, 이렘나 본토에서는 경제적 위기가 실감되지 않을 정도로 평온한 상태를 이어간다고 한다.
UMG 포럼 개최
5103년 8월 19일, UMG에서 시메타시스 주도 하에 열린 UMG 극지연구포럼이 사상 최대 규모로 개최되었다. 이 포럼에서 시메타시스는 제약없는 극지연구를 주장하며 UMG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발표했다. 시메타시스 의 발표에 따르면, 전년대비 연구 인원과 투자액은 각각 300%, 450%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시메타시스 UMG 지역의 기반시설 충원 및 연구자와 가족들의 자유로운 이주계획을 발표했다.
시메타시스의 수상한 동향
5104년 1월 13일, 자소크 철학단 방위청 산하 육군 부대 소속의 펠레마 헤르네디아가 시메타시스의 동향을 파악한 결과, 시메타시스의 UMG 지원이 발표된 이후 수많은 거주지구와 기반시설이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또한 많은 시메타시스인이 UMG로 이주하고 있다.
하지만 친적, 지인 중 군인이 있는 과학자들을 우선적으로 이주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자소크 철학단의 군대에서 돌았다고 한다. 또한, 시메타시스가 출입 금지구역을 늘리고 있다는 점도 수상하게 느껴진다.[20]
한가지 더 이상한 점으로, 시메타시스의 조원들 중 일부는 소름끼칠 정도로 창백한 피부를 가지고 있거나 이질적인 날개 모양을 가지기도 하고, 그 중에 몇몇은 또 일부로 날개를 뜯어버린 듯한 자국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을 수상하게 여겨 펠레마는 더욱 자료를 조사하여 자소크 철학단 군대에 첨부한다.
자소크 스카니아 함대의 소실
자소크 철학단 방위청 산하 해군 부대 소속의 발레디스 키녹사르가 동년 2월 5일, 디 주와 토니겔로트 사이의 타시스 지역 함대가 소실되었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정확한 침공 시점을 알 수 없으나, 키미아 앞바다에 흘러온 함정 잔해를 보고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잔해의 양과 종류, 구성 부품으로 보아하건대 동북 방면 함대에 통신을 위한 함정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적대 병력은 에청, 바토르스카딘, 미노아, 아피용의 4개 섬을 점거하고, 접근하는 모든 물체와 동북지역 해안 자체를 공격하고 있어, 근시일 내 적대 병력이 본토를 습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적대 병력은 자소크의 무기 및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외래 세력으로 확인되었으며, 철사에게는 핫라인을 통한 긴급 연락을 요청했다.
신원 불명의 적대세력에 의한 자소크 침공
자소크 철학단 방위청 산하 해군 부대 레닌 함대의 제독 발레디스 키녹사르가 2월 5일, 디 주와 토니겔로트 사이의 스카니아 함대가 소실되었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정확한 침공 시점은 알 수 없었고, 발레디스는 키미아 앞바다에 흘러온 함정의 잔해를 보고서야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잔해의 양과 구성 부품, 그리고 앞 뒤 맥락을 파악해 보았을 때에 스카니아 함대에는 통신이 가능한 함정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며, 정확한 피해 상황은 미상인 채로 연락되었다.
적대 병력은 에청, 바토르스카딘, 미노아, 아피용의 4개 섬을 점거하고 접근하는 모든 물체와 투타여르 데 자소크의 동북 해안을 공격하고 있고, 근 시일 내에 본토로 습격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적대 병력은 자소크의 무기 및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외래 세력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철사 베시 오마는 북메티샤 조약기구에게 공격자 정보 확정 협조 및 확정 시의 경제 제제와 군사 협력을 요청하였으며, 방어청장 바르테미스 크라우치는 이동 가능한 인·물적 자원의 반 이상을 토니겔로트 주와 디 주에 배치했다. 또한 방어청장은 공개적으로 “실재하는 인·물적 피해가 발생한 바,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으로 생각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사는 UMG에 시메타시스가 일반인을 이주시키고 있다는 것과 이번 타시스 침공에 연관이 있을 것으로 예측했지만, 북메티샤 조약기구에 이것을 알리지는 않았다.
자소크 철학단의 내부, 특히 동부 주들에서는 전쟁으로 발생할 피해를 대비하여 육로를 통해 다른 주로 이동하거나 비상식량을 챙겨두는 등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렘나의 침공사실 확인, 전쟁 초기
이렘나의 해안 장악, 자소크 맹세기사단의 설립
5104년 5월 8일, 자소크 철학단 방어청 본부에 디 주 해안으로부터 도착한 화상 통신이 재생되었다. 신원 미상의 무장세력과 전투가 펼쳐지는 동북부 해안에서의 일방적인 화상통신이었다. 본부의 통신 요원은 해당 통신의 초입부를 신청한 후, 전장의 현황을 고위직들에게 알리려는 목적으로 회의실로 해당 통신을 교환하였다.
그러나, 보내진 통신의 마지막 내용은 조금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 [00:00:01] 통신이 시작된다. 화면에는 자소크 육군의 식별마크를 착용한 수원 하나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수원은 별다른 이상징후를 보이지 않았지만, 마력을 머금은 듯 보랏빛으로 눈이 빛났다. 그러나, 그가 직접 쓴 마법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배경은 실내로, 반쯤 붕괴된 건물의 내부인 것 같았다. 무채색 회벽 사이로 스며드는 풍경으로 보아, 수원은 1층 또는 2층에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00:00:01] 자소크 통신원 — "통신 연결완료. 본부에 전장의 현황을.... (치직거리는 소리) ... 습니다."[00:00:07] 화면에 나타난 통신원은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00:00:10] 자소크 통신원 — "제 이름과 소속은... 이름... 소속 (갑자기 머리가 아픈듯 감싸쥐더니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 아아..."
[00:00:15] 통신원은 마치 자신이 커다란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한다. 이따끔씩 실성한 웃음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00:00:23] 자소크 통신원 — "이... 타시스 북쪽 해안... 전장의 전망... (치직거리는 소리)... 전달한다."
[00:00:29] 자소크 통신원 — "전쟁을... 그만두어야... 한다. 생명을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항복을...(치직거리는 소리)"[00:00:35] 통신원은 두려움에 잠긴 채 눈동자를 피르르르 굴렸다.
[00:00:48] 통신원은 다시한번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입모양과 그가 내는 목소리는 맞지 않았다.
자소크 통신원 : "자소크가 이끄... 위선적인 평화와.... 전 사트...를... 위협을... 중지해야 한다..."
[00:00:54] 자소크 통신원 — "그것이...(치직거리는 소리) 전 사트를 위한 유일한 방법."[00:01:06] 통신원은 비굴해보이는 미소를 활짝 지어냈다. 보랏빛 안광이 희미해지면서, 마치 생명력을 다한 듯 통신원은 파편 사이로 쓰러졌다.
[00:01:20] 시점이 건물의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화면이 고정될 무렵, 시점은 조원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소크의 조원이 아니었다. 창백한 피부에 철제 갑옷을 입고 있는 조원은 마치 화면 너머의 방어청 본부를 겨누어 말하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방출음이 많이 섞인 억양이었지만, 그는 꽤나 정확한 자소크어로 말하고 있었다.
??? : "이것이 우리의 예법으로 그대들에게 전언한 것이니, 그대들의 방법으로도 전언을 해야지."
[00:01:41] ??? — "자소크, 위선적인 평화를 내새우며 사트를 향한 지배욕을 숨기는 자여. 그대가 일으킬 위협을 종결하기 위해, 우리 이렘나와 그대 자소크는 전쟁 상태에 들어갔음을 알린다."약 3분간 치직대는 노이즈소리, 건물의 파편에서 튀인 먼지소리 따위의 의미없는 소리만이 계속되었다.
[00:04:51] 화면이 다시 밝아지자, 모습에 들어온 것은 힘없이 늘어져있는 통신원의 모습이었다.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부드럽게 누워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깃발에 찔려있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발톱이 서로를 향해 파고든 것과 같은 깃발에.
영상 종료, 기록 중지
”
이후 이렘나 철랑대에서는 점령한 투타여르 데 자소크 동부에 자소크 맹세기사단을 건국하였다.
동북부 해안 도시에서의 패전
5105년 8월 4일, 자소크 철학단의 이렘나 철랑대에 의한 점령 현황은 다음과 같다.
“ - 토니겔로트 주의 인시가 점령되었다.
- 토니겔로트 주의 아바바에서 시가전이 진행되는 중이다.
- 디 주의 아그러네가 점령됨에 따라 자소크군 상당수가 고립되었다.
- 디 주의 타시스에서 시가전이 진행되는 중이다. 이 도시는 자소크 철학단의 동북부 최대 도시로 빼앗겼을 경우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
”
그 외로, 이렘나 철랑대가 점령한 자소크 철학단의 여러 도시에서 비인륜적인 행위가 확인되었다.
혼란을 틈탄 시메타시스의 UMG 장악
시메타시스의 새 법안: 신원보장 계획
5104년 8월 15일, 방위청 육군부대 소속 펠레마 헤르네디아가 시메타시스의 동향을 파악한 것중에서, 의심스러운 동향이 발견되었다.
온토사 녹실드[21]가 5105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UMG 소속 자소크인에 대한 육해상 신원 보장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펠레마 헤르네디아는 이것이 UMG에 소속되어있는 자소크인에 대한 신원을 확보하고 유사시 시메타시스로 흡수하기에 용이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의심했다.
따라서 육군부대는 자소크 철학단의 민간인, 군 관계자, 과학자들에 대한 대피계획 또는 전투계획을 시행하려고 하고, 자소크 철학단 방어청 본부에 승인을 요청했다.
자소크 철학단은 일단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 시메타시스가 앞으로 보이는 동향에 대해서 파악해보기로 했다. 특히 민간인에 대한 대피 솔루션을 마련해두되, 5105년 3월 1일까지 아무런 행동이 없다면 그대로 체류하는 것을 일단 계획으로 삼은 것이다.
아래는 펠레마 사르닉셔스의 보고 전문이다.
“ 자소크의 길은 세계를 빛내리라!
다시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방위청 산하 육군부대 소속의 펠레마 헤르네디아입니다. 시메타시스 동향 파악 임무 보고를 올려드립니다.
시메타시스 의 당-의회 대표[22] 온토사 녹실드가 5105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UMG 소속 자소크인에 대한 육해상 신원보장계획을 실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본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자소크인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보이시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UMG에서의 자소크인에 대한 차별은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적용되는 계획 역시나 자소크인들을 피차별적 지위로 내모는 시메타시스 의 계략중 일부라고 생각됩니다. 주 골자로 자소크인들에 대한 거주 및 신원의 확인과 자소크의 현황에 따른 법률지원 미비로 인한 자소크인 구제가 있습니다만, 유사시에 자소크인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시메타시스로의 흡수를 용이하게 하려는 생각일 것입니다.
일전에 건설해놓은 인프라와 건물 역시나 군사적인 충돌을 감안하고 자소크에게 부담을 안겨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합니다. 충돌로 인해 건물 내부의 민간인들에게 피해가 간다면 민간인에 대한 공격으로 외교적 이점을 취할 테고, 인프라와 건물을 파괴하지 않는다면 저희 측의 전략적 불이익이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저 계획을 당장 시행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로 예상됩니다. 명분 제작의 목적도 있을 것입니다만, 정확하게는 권고, 아니 통첩이겠지요. 앞에서의 계획 실행도 "5105년 3월 1일까지 자소크는 UMG에서 나가라."라는 말을 번지르르하게 늘어트린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자소크에 충성하는 군인이 된 이상 우리의 영토에서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인도적인 도주로를 만들었다고 선전하겠지만, 저희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국가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저희로써도 할 수 없는 일. 명령을 주신다면 그에 따르겠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UMG에 거주/체류하는 자소크 철학단 의 민간인, 저를 포함한 잠입임무를 시행하는 군 관계자, 과학자에 대한 대피계획/또는 전투계획을 시행하려 합니다. 상부의 명령이 도착하는 대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5104년 8월 15일. 제로. 육군 부대 소속, 펠레마 사르닉셔스 헤르네디아 21세
”
자소크 군인의 적발 및 시메타시스의 UMG 진격
5105년 5월 3일, UMG에서 첩보 활동을 하던 자소크 철학단 육군부대 소속 인원이 시메타시스에 의해 대거 적발되었다.
온토사 녹실드는 이것을 보고 4164년 체결한 종전협약에 대한 위반이라고 말했으며, "우리는 1000년동안 자소크에게 속고 있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시메타시스 의회는 긴급 회기를 개각하여 UMG에 대한 제1차 특수처분안을 가결시켰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 UMG의 주권은 본래 시메타시스에 있으나, 자소크 철학단의 전후 요청에 공동주권지로 개정하였다고 판단
- 자소크 철학단은 UMG 형성 이후로 협약을 이행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여, 4164년의 협약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 만일 존재한다고 해석하여도, 협약의 의무 거부로 인하여 무효화
- 위 사항에 의거하여, 시메타시스는 UMG에 대한 유일한 주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던 자소크 철학단의 주권은 적용되지 않음
- 이에 따라 UMG지역의 무장 해제는 자소크 철학단의 불법적인 군사적 압박으로 판단, 시메타시스는 해당 지역에 유일하게 군사를 주둔시킬 권리를 가짐 또한, 시메타시스의 법률만 적용시킬 권리를 가짐
”
시메타시스 의회는 이 안건을 즉시 실행하였으며, 5105년 5월 5일부로 UMG 전역에서 시메타시스 군대가 주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UMG 출신의 시메타시스-자소크 복수국적자는 위 안건에 기반하여 자소크 국적을 박탈당한다. 또는 자소크 단일 국적자의 민간인 및 과학자는 자소크 본국과의 교신으로 외환을 발생시킬 가능성을 고려하여 구금 및 강제이주를 시행할 예정이다.
또한 시메타시스 의회는, UMG의 주권 확인을 위하여 자소크 철학단 과의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적발되어 생포된 육군 부대 소속의 첩보인원의 신원 또한 이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시메타시스는 이번 사태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이렘나 철랑대가 자소크 철학단 동부에 설치한 자소크 맹세기사단을 국가로서 인정하였다.
자소크 철학단의 항의
5105년 5월 4일, 베시 철사는 시메타시스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와 그 근거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UMG에서 방어청 군인이 발견된 것은 무장을 위한 것이 아니며, 그 근거로 포터스나 물리·화학적 무기를 사용하지 않음을 제시했다. 이에 군인의 파견은 자원확보를 위한 것이며 이는 UMG의 목적에 맞다는 입장을 이었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 자소크 철학단과 상의되지 않은 계약 파기는 유효하지 않다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시메타시스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침략과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따라서 평화구역에서 시메타시스가 한 것은 무장해제가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납치이며, 먼저 군대를 주둔한 것은 시메타시스측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한 공개적으로 이것이 시메타시스 본토 내의 자소크 철학단 영역에 대한 불만감 표출과 영토 확장에 대한 야욕이 아니라면 무엇이냐며 비판했다.[23]
탄티샤 동향 분석 데이터
5107년 4월 3일, 자소크 철학단 하키엘러시아에 주재하는 관계부 본원에 다음과 같은 서류가 도착했다. 서류에 남은 생체물질과 사용흔적이 지워져있어 서류위 출처를 알아내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해당 서류에는 자소크 철학단에서 알기 힘들었던 정보들이 내재되어있었다.
“ — [데이터 1] —
시메타시스가 선언했던 대로 UMG에 군대를 주둔시킨지 5개월이 지났다. 당-의회 대표 온토사 녹실드는 UMG 지역의 민간인 신분의 군사 요원의 출입은 평화 지대의 체제안정보장을 깨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였다. 그는 자소크 철학단의 항의를 무시한 채 UMG의 행정체제을 개편하였으며 사실상 병합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UMG 현지 여론은 병합에 긍정적인 편이며...
”
“ — [데이터 17] —
최근 조사 결과로 UMG 지역의 인구비율은 시메타시스인 63%, 구 이중국적자 21%, 자소크인 15%로 시메타시스인 중 상당수가 5100년 이후에 이주한 사람으로 드러났다.
”
“ — [데이터 2] —
시메타시스 당-의회 대표 온토사 녹실드는 이틱에 주재하는 특사를 통해 자소크 철학단과 건전한 협상의 자리를 가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
“ — [데이터 21] —
”
“ — [데이터 4] —
"처음에는 그들이 약속을 깬다고 하였을 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협적으로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연구자금을 더 지원받을 수 있어서 나아진 것 같습니다. — UMG 소속 자소크인 달메리드 코마론
”
“ — [데이터 25] —
시메타시스에서 자소크인 상당수가 딜렌과 ... 등 시메타시스의 내륙지방으로 이주했다는 ... 들어왔습니다. 또한, 이주하지 않은 ... ... 아마도 대역을 ... 선전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 [데이터 7] —
시메타시스는 5105년부터 일어난 자소크-이렘나 전쟁으로 인한 법률 지원 미비를 우려하여 특수 사증 및 체류권을 발급했습니다.
”
“ — [데이터 26] —
그들은 ... 장악하였습니다. 본국으로 연락하는 ...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 ... 어려울 것 같습니다.
”
“ — [데이터 9] —
시메타시스는 북메티샤 조약기구 및 사트의 여러 국가에 특사를 보내어 탄티샤의 평화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시메타시스 정부는 자소크와 이렘나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올바른 중재가 필요할 때라고 역설하였다.
”
“ — [데이터 35] —
시메타시스의 ...들이 이렘나 철랑대 및 ... 맹세기사단의 ... 접촉 ... ... 요구 ... 허락 ...
”
시메타시스의 UMG 장악을 위한 계략
시메타시스 의회에서 5107년 4월 4일 부로 지정전쟁국가의 국가권한에 대한 임시이양결의를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따르면 시메타시스는 전쟁중인 주변국가의 국민들을 자신들의 국민과 같은 대우를 해주게 된다.
최근, UMG 지역 내의 자소크인들에 대한 재산소송들이 기각되고 있다고 한다. 전쟁중 법률지원 미비의 허점을 노리고 자소크인들의 재산을 노린 일부 시메타시스인들의 소행으로 보이는데, 시메타시스 법원은 자소크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메타시스 의회법관 카르돈 길로만[24]은 'UMG 소속 자소크인에 대한 육해상 신원보장계획과 이 법률이 있는 한 자소크인들의 권리는 침해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자소크는 이 지역에 불법적인 주권을 내세워 이곳을 점령지처럼 대했지만, 시메타시스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주권이 모두 지켜지는 곳이 곧 구 UMG 구역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부 시메타시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행동이 시메타시스의 기획소송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것을 각 계층의 이권쟁탈을 이용하여 국가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시메타시스만의 엘리트주의적 책략라고 말했다.
내륙전선
5107년 이후로, 이렘나 철랑대는 자소크 철학단의 내륙지방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자소크 철학단은 초기에 이렘나를 막지 못했기에, 이렘나의 진격은 오랜 전쟁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자소크의 파르티잔이 변절자를 처치하다
5107년 5월 6일, 자소크 철학단의 타시스 시에서 자소크인 수원 출신의 파르티잔이 Chardem[25] 주문을 사용하여 자소크 맹세기사단의 기사계급 3명을 처치한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 일로 인해 사살당한 간부진들은 자소크 철학단 출신으로, 현지의 군관이었으나 변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들은 동족인 자소크인들을 학대하고 수탈하였으며, 이렘나 철랑대의 충실한 앞잡이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한편, 이렘나 철랑대 및 자소크 맹세기사단이 동북부 지역에서 일정 이상의 포터스 구사자를 가혹한 노동환경으로 내몰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포터스 구사자의 감정상태 교란을 목표로 한 것으로 추측된다.
윌라이히, 아바바 함락
이렘나 철랑대의 침공으로 자소크 철학단의 윌라이히 시와 아바바 시 2개의 도시가 점령되었다. 두 도시는 비슷한 시기에 이렘나 철랑대의 손에 떨어졌으나, 그 양상은 정반대였다.
5110년 2월 6일, 5년에 달하는 시가전 끝에 토니겔로트 주의 아바바 시가 함락되었다.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아바바 시는 현재 텅 빈 상태나 마찬가지이며, 도시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다행히도, 5109년 겨울부터 진행된 자소크군의 대피 작전으로 인해 많은 수의 시민들이 안전하게 도시를 탈출할 수 있었다.
5110년 4월 3일, 자소크 철학단의 동북부 최대도시인 타시스 시의 위성도시인 윌라이히 시가 이렘나 철랑대의 손에 넘어갔다. 윌라이히시는 타시스시보다 후방에 있으며, 전략적 가치가 큰 도시이나, 지형 및 교통상의 문제로 규모에 비해 배당된 자소크군의 수가 적었다. 그마저도 타시스 시의 공방전으로 상당수가 전출되면서 도시의 방위가 약해졌다. 그러던 와중 도시에 알수없는 소문이 나돌았다. '자소크가 타시스를 지키기 위해 윌라이히를 버렸다.' 소문은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채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파견된 자소크군 몇몇이 해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계엄령을 선포하고 물리적인 제압을 시도하였다. 윌라이히 시민들은 분노에 가득 차 주둔하는 자소크군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자소크 맹세기사단에 항복 및 복종을 선언하기 이른다.
철사는 그 다음날, 이른바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에 가담한 군사 몇몇을 특정했다며, 이들을 자소크 철학단 방어청 소속에서 제명하겠다고 밝혔다. 철사는 “방어청이, 군대가 무엇을 위해 자소크에 존재하느냐”며, “전쟁으로 가치를 저울질하는 상황이라도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며 크게 분노를 드러냈다.
또한 철사는 윌라이히 시가 지리·교통·시기상 접근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었고, 이렘나는 현재 모든 것을 내려놓을 각오를 하고 전력을 다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윌라이히 시에 대한 조건상 최대의 지원을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도 시민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피해와 피난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두 도시의 함락으로 인해 오이스트 시와 타시스 시의 방위에 난점이 생겼으며, 타시스 시는 포위전을 앞두고 있다. 또한, 윌라이히시에 위치한 자소크군 상당수가 시민들에 의해 이렘나 철랑대에 포로로 넘겨지며 이들의 생사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시메타시스의 포로 송환
5111년 5월 1일, 시메타시스는 6년 전 UMG에서 생포된 포로들을 자소크에 반환하였다. 당-의회 대표 온토사 녹실드는 "그들은 우리의 주권을 위협한 자소크의 앞잡이겠지만, 우리는 자소크와의 신뢰관계를 다시 쌓아야할 필요가 있다. 시메타시스는 관용적인 국가이다."라고 밝히며 생포된 포로를 일방적으로 해방시켰다.
이번 포로 해방으로 송환된 UMG에 파견되었던 고위 장교는 2명이며, 일반 요원은 73명이다.
시메타시스의 당-의회 대표 온토사 녹실드는 자소크 철학단이 UMG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고 불법 주권 침탈에 대한 사과를 한다면 이들을 풀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으로, 돌아온 요원들의 대다수가 후방배치[26]를 거부하고 전방으로 배치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송환된 고위 장교인 멕틴 모르고스[27]와 펠레마 헤네르디아는 '시메타시스가 동료중 일부를 자소크 맹세기사단에 넘겼다. 작전의 연장으로서, 우리는 실패의 과오를 씻고 동료를 구원해야할 의무가 있다.'며 자소크 맹세기사단과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북부 배치를 요구했다.
아그러네 포위지의 소멸
5114년 5월 6일, 9년에 달하는 포위를 끝으로 아그러네 교외지가 이렘나 철랑대의 자소크 맹세기사단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아그러네 지역에 주둔하던 자소크군의 소식이 끊긴 지 4일 째 되던날, 타시스 강의 동쪽 지류를 따라 2만 4천명에 달하는 자소크의 민간인들이 쪽배들와 바지선, 부표를 타고 이렘나의 점령지역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했다. 포위 지역 바깥에 있는 자소크군의 인계를 받아 안전지대로 이동한 그들은 아그러네 시와 주변 지역의 민간인들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들 중 무장한 인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전말은 이러했다. 5114년 초부터 아그러네 교외지에 포위된 자소크군은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만약 수많은 민간인들이 이렘나의 손에 떨어진다면 그 이후는 불보듯 뻔하리. 포위지의 자소크군은 민간인들을 구하기 위한 특수 작전을 설계했다. 바로, 타시스 강의 동쪽 지류를 따라 민간인들을 탈출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날부로 포위지역의 자소크군은 물에 뜰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지 뜯어내기 시작했다. 참호의 지지목과 임시 설계물, 창문의 빛가림틀과 목조주택의 골조까지. 엄폐물이 없어진 덕분에 포위 지역의 자소크군은 커다란 피해를 입기 시작했고, 사상자는 늘어갔다. 그러나, 민간인을 탈출시키기 위해서라면 중지할 수 없었다.
5114년 5월 4일, 여름의 끝을 아쉬워하듯 안개가 지평선의 끝까지 내려앉았다. 포위지역의 자소크군은 물에 뜰 수 있는 물품으로 만들어낸 쪽배와 바지선에 민간인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함께 가지 않느냐는 민간인들의 질문에 '무장한 인원이 타면 더욱 심한 보복을 받을 수 있다'라는 답변만 하며 민간인들의 대피에만 전념했고, '민병대 역시 이렘나에게 민간인을 학살할 여지를 준다'며 정식 군인이 아닌 자들도 가족들과 함께 탈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게 포위지역의 자소크군은 민간인이라면 한명도 빠짐없이 타시스강의 남쪽으로 보낼 수 있었다. 마지막 배가 출발하였을 때, 그들은 시야에서 민간인들의 모습이 사라지기까지 경례 자세를 한 채 동족의 탈출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아그러네의 모든 민간인은 탈출할 수 있었다.
이후, 자소크 철학단의 공군 몇명이 아그러네의 상공을 정찰하였다. 그러나, 지면에서는 자소크군의 그 어떠한 표식도 발견할 수 없었다.
타시스 몰락
5116년 2월 1일, 자소크 철학단의 동북부 최대 도시 타시스가 이렘나 철랑대에 의해 함락되었다. 아그러네와 같이 오랜 포위전 끝에 함락되었지만 아그러네의 때와 같은 희망은 없었다.
자소크군은 시가전을 통하여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의 군대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이렘나 철랑대가 전쟁용으로 데려온 드래곤 3마리를 사살하였으며, 철랑대장 2명이 타시스 시가전에서 사망하였다. 자소크군은 이번 시가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나, 그것뿐이었다.
자소크군은 전략적으로 타시스를 오랜 시간동안 방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타시스의 민간인 대피를 느슨히 하였다. 물론, 타시스 시의 혼란과 사회붕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실제로 도시 북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10년동안 자소크 철학단의 관리하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이렘나 철랑대의 군대는 그들의 생각보다 빨랐다. 시가전에서 몇번 데인 이렘나 철랑대는 수많은 마법기사와 소형 와이번을 배치하여 고층 건물 사이의 시가전을 준비하는 자소크군을 제압하였고, 5116년 1월 16일 자소크군은 타시스에서의 후퇴를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타시스의 시민들은 단 5일만에 일어난 급변에 대비하지 못하였다. 자소크군은 급히 민간인 대피계획을 세웠으나 70만에 달하는 도시 인구를 대피시키기에는 무리였고, 그마저도 후미에 깔린 한기 마법에 의해 차단되었다. 1만 2천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탈출하다가 동사하였으며, 미리 탈출한 3만명을 제외한 나머지 65만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은 이렘나 철랑대의 손에 넘어갔다.
급변한 5일동안의 탈출 인원은 겨우 21명에 불과하며, 이 소식이 퍼진 자소크 동북부의 다른 도시들들이 동요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편, 타시스의 정복으로 인해 이렘나 철랑대및 휘하 지역내 최대 도시 타이틀은 타시스에게로 넘어갔다.
점령지의 이렘나화를 추진
5116년 3월 4일, 타시스를 점령한 이렘나 철랑대는 타시스의 중심가에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였다. 이것은 피지배민인 자소크인에 대한 처우에 깊게 관여된 선언이었다.
다음은 선언의 내용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 "이곳의 땅은 우리의 고향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은 나약하여 진정으로 따라야 할 힘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대는구나. 윌라이히[28]만큼의 충성이라도 보였으면 좋았겠건만, 그대 타시스는 우매했다.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으리...(중략)...
윌라이히만큼의 자비를 허락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타시스가 이렘나의 일부가 되려 노력하는 것을 막지 않겠다. 그것이 우리가 선사하는 이렘나의 질서이다."
”
그 후, 철랑대장[29]은 자소크인 아이 하나를 데려오더니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철랑대장의 말에 아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였다. 철랑대장은 가만히 듣더니, 아이를 품에 안으며 이렘나식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 "정복자나 압제자라 부른다면 그리하여도 좋다. 그러나, 피지배자가 그대를 칭하는 영원한 표현은 아니다. 우리는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타시스의 시민들은 그 누구도 이렘나 철랑대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이유없는 전쟁을 시작한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렘나가 점령지의 시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렘나는 이와 함께 점령된 자소크 철학단의 도시 이름을 이렘나식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다른 자소크 도시에 대한 본보기로 타시스 시민의 약 20%인 13만명을 이렘나 철랑대의 본토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점령 과정에서 저항한 시민 3만명을 생포하여 윌라이히 시에 충성에 대한 포상이라는 명목으로 판매하였다.[30] 5116년 초부터 이렘나의 가혹행위에 견디지 못한 자소크인들은 피정복지 여러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5119년~5121년 자소크 반격
올로니 점령
5119년 3월 4일, 자소크 철학단의 디 주에 위치한 올로니 시가 점령되었다. 올로니 시는 방어에 유리한 지형으로, 이번 자소크-이렘나 전쟁 초기부터 자소크 철학단이 요새화에 힘쓴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로니는 자소크 철학단의 기대와 달리 타시스의 함락까지 걸린 시간의 20%조차 버티지 못했다. 이렘나는 이 지역을 점령하고, 올로니라는 도시의 이름을 이렘나식으로 울네브라고 개칭하였다.
올로니 전투에서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5117년 5월부터 시작된 이 전투에서만 지금까지 발상한 사상자의 수치를 아득히 뛰어넘는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자소크 철학단과 이렘나 철랑대에서 각각 68만 1400명, 17만 5540명에 해당하는 사망자가 나왔고, 사상자는 이 수치를 가뿐히 초월한다. 자소크군 생존자들은 하나같이 이 전투를 도살장이라고 부르며 크나큰 고통을 드러냈다. 한편 이 전투는 이렘나로써도 크나큰 손실이었는데, 이렘나 철랑대는 이번 전투로 인해 전체 인구의 2.5%가 사망하였다.
게다가, 이렘나의 수반인 철랑대장[31] 6명이 이번 전투로 인해 사망하면서, 이렘나는 잠시간의 평화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시메타시스는 자소크 철학단에게 임시적 평화조약을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렘나 내부의 동요
“ 올로니 전투의 참상은 이렘나 철랑대에게도 알려졌다. 이렘나 내부에서는 자국민의 2.5%가 죽은 이 전투로 인해 전쟁의 목적과 명분에 대해서 회의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전쟁 초기부터 이번 전쟁을 반대해온 미래주의자[32]들과 코스모주의자[33]들이 이번 전투를 계기로 철각을 향한 반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렘나 철랑대는 자소크의 기술력을 추종하는 미래주의자와 사회주의 인터네셔널의 도움을 받을 우려가 있는 코스모주의자들을 미리 제압하기 위하여 자소크 철학단에 원정을 나가있던 병력의 일부를 본국으로 급파하였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이렘나 철랑대 해군의 정예병력을 차지하는 크리할니킬 전쟁선단[34]과 세셸브 해저선단[35]이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5119년 8월 2일, 카나 보고문
시메타시스의 제의
올로니 전투 이후, 지상에서는 자소크 철학단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해상의 경우에는 달랐다. 이렘나 철랑대의 정예 선단이 귀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소크의 동북방을 담당하던 스카니아 함대가 소멸한 탓에 해상 지역에서는 아직 이렘나 철랑대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이렘나는 시메타시스의 항구를 임대하여 보급과 선단 유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고, 이것은 시메타시스의 전 성명과는 달랐다.
5121년 1월 4일, 시메타시스의 의회는 비밀리에 자소크 철학단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제안하였다.
"구 UMG 지역이 시메타시스 영토임을 깨끗히 인정한다면, 이렘나 철랑대에 대한 항구 임차를 중단시킬 의향이 있다."
또한, 시메타시스 의회는 자소크가 이번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구 UMG 지역을 통한 자소크 철학단의 극지 연구를 제한하지 않을 것이며, 이렘나 철랑대 치하의 자소크인들을 생각하여 현명한 결정을 내기 바란다고 하였다.
올로니 해방
5119년 6월, 이렘나 철랑대가 점령한 자소크 영토 위로, 해방군이 물밀듯이 쳐들어왔다. 자소크 철학단은 시메타시스가 주선한 휴전 협약을 거부하고 이전 전투로 인해 소강상태에 빠진 이렘나 철랑대를 몰아냈다. 이번 작전으로 인해 자소크 철학단은 올로니 시[36]를 비롯한 빼앗긴 영토의 상당수를 되찾고,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이 소식인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 점령 하의 자소크인들에게도 전해져, 점령지의 많은 자소크인들이 이렘나에 대항한 파르티잔을 구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파르티잔은 토니겔로트 주, 디 주, 키미아 주의 이렘나 점령지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렘나는 현재, 물밀듯이 들어오는 자소크군과 후방의 파르티잔을 동시에 상대해야하는 처지이다. 이번 작전을 실행한 자소크군 소속의 맥틴 모르고스는 침략자 새대가리들이 이 곳에서 물러날 때까지 휴식은 없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승리를 단언할 수 없다. 이렘나의 선단들이 자소크 북동부의 재해권을 잡고 있는 한 연안을 회복하기는 무리일 것이라고 판단된다.
파르티잔에 의해 해방된 포젤리무스
자소크군의 연이은 승전 소식과 이렘나 선단 일부의 귀국 소식으로 전황의 흐름이 바뀌어가고 있을 무렵, 자소크 철학단 디 주 동부의 항구 도시 포젤리무스에서 이렘나 철랑대에 저항하는 파르티잔이 일어났다.
1년 전 이렘나 본토의 소요사태를 막기 위해 정예선단들[37]이 포젤리무스의 항구를 떠난 이후에도 포젤리무스 시는 압제자인 이렘나인들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지도 않았다.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크고작은 항쟁과 시위조차 이 도시와 근처에서는 일어나지도 않았으며, 이렘나인들의 가혹한 강제노동에도 어떠한 반발을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윌라이히 사람'[38], '이렘나의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난 도시'라는 멸칭까지 붙을 정도였다.
그러나, 포젤리무스 시민들은 이렘나에 저항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도시의 지하와 지하를 연결하여 파르티잔의 본부를 세우고, 포터스 구사가능자와 무기들을 비축하였다. 그들은 주변 지역의 정세를 확인하고 항구와 이렘나 기사단의 동향을 살폈다. 이렘나의 의심을 거두기 위해 시민 대표중 일부는 강제 노역 시간을 늘려달라는 요청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들 역시나 다른 자소크인들처럼 이렘나의 만행을 증오하는 사람들이었다.
5120년 8월 16일 새벽이 아침으로 바뀌기 시작했을 무렵, 그들은 일어났다. 길거리에 내걸린 자소크 맹세기사단의 상징들을 부수고, 이렘나어로 적힌 매체들을 찢으며 그들은 압제자에 대항하였다. 하룻밤 사이에 자소크인들의 가정집은 반란군을 위한 요새가 되어있었으며, 거리의 행인들은 이렘나에 저항하는 포터스 구사자가 되어있었다. 우리는 짓밟히지 않으리! 자소크 또한 짓밟히지 않으리! 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은 이렘나군을 몰아냈다. 포젤리무스에 주둔하는 이렘나 기사단과 자소크인 앞잡이들은 이렘나의 선단들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5109년 일부 선단의 귀국으로 인한 해상병력 감소로 인하여 반란을 제압할 수 없었다. 그날, 포젤리무스 시청에 걸린 '페르츠프즈타메다'[39]라고 적힌 현판이 쪼개진 채 불살라졌다.
현재,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은 포젤리무스 시의 서부 일부만 남긴 채 시 전역에서 퇴각하였으며, 포젤리무스 시는 자소크 철학단과의 연락을 위해 도시 외곽에서 싸우고 있다고 전해진다.
5121년 철학수복계획
토리겔로트 해방작전
5122년 7월 3일, 포젤리무스의 해방 소식이 들린 이후.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은 디 주에 상당수의 기사들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자소크 철학단은 마치 이렘나 철랑대의 행동을 읽은 듯 토니겔로트 주 동부와 바토르스카딘 해협지대에 대한 공세를 진행하였다.
자소크 철학단은 이렘나 점령지의 파르티잔과 치밀한 작전연계를 통하여 이렘나 기사단을 농락하였으며, 그 결과로 오이스트 시는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렘나는 이번 전투들로 인해 전쟁 초기부터 지배해온 베아트리체 시로의 진입을 허락하였으며, 현재 베아트리체 시에서는 시가전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자소크는 인시 시로의 진입로를 확보하였으며, 시내에서 전투하고 있는 파르티잔과의 연계를 준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소크 철학단이 실행한 5122년 봄의 해협 대공세는 유래없는 성공을 가져왔다. 자소크는 바토르스카딘 해협지대를 향하는 수많은 길목을 탈환하였으며,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상실한 바토르스카딘 해안을 16년만에 되찾았다.
그러나, 타시스와 윌라이히를 포함한 디 주 동부를 되찾기에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측된다.
동맹군 합류
5121년부터, 자소크-이렘나 전쟁을 지켜보던 사트의 여러 나라로부터 자소크 철학단에 대한 전쟁수행지원이 도착하였다.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렘나 철랑대에 대한 선전 포고 및 전투 지원 (1개국)
자소크 철학단에 대한 민간 및 군사 지원 (3개국)
전쟁으로 곤란에 빠진 자소크 철학단을 구원하기 위한 각국의 도움들은 자소크 철학단이 전쟁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자소크의 군민개혁
정치장교 도입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권고로, 자소크 철학단은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군인들에게 심리적 안정 및 전투 의지 보충을 위하여 정치 장교라는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이것은 군인들의 사상을 제어하기 위한 사회주의식 시스템으로, 비-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자소크 철학단이 처음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 교육을 통해 자소크인 출신으로 첫 정치장교가 된 쇠르더 티니오스[40] 씨는 “전선에 나가있는 동지들이 침략자 이렘나 앞에서 전의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상적으로 오도되는 일 없이 단결한다면 우리는 사트의 그 어떤 단체보다 강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등합니다. 그 어떤 인민도 소위 말하는 압제자에 고통받아서는 안됩니다.”라며 정치장교의 필요성과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하였다.
8시간 노동제
5124년 3월 1일, 자소크 철학단 정부는 전쟁에서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새로운 노동법을 발표하였다.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취침으로 이루어진 새 노동법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권고로 도입되었으며, 이를 통해 자소크 철학단은 생산력의 유의미한 향상을 노릴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소크 철학단의 노동자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엄수하는 새 노동법을 매우 반기고 있다고 한다.
키미아 지류 폭풍작전
5121년 8월 6일, 아르토이트 제국 출신의 의용군 참모들이 고안한 키미아 지류 폭풍작전이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자소크 철학단의 디 주와 키미아 주의 경계선에 위치한 키미아 강 지류는 5116년 이래로 이렘나 철랑대의 점령하에 놓여있었으나, 자소크 철학단은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이 지역을 수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토이트 제국 의용군들은 전황을 살피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 이렘나 철랑대의 병력들은 강하나, 그들은 상황 변화에 익숙하지 못하다. 빠른 급습과 교란작전을 병행하여 사용한다면 이 지역의 탈환은 무리가 아니다.
”
아르토이트 제국 의용군 참모진에 따라, 5121년 8월 3일부터 단 3일간, 경장갑의 무기만을 동원한 키미아 지류 폭풍작전에 돌입하였다. 강의 지류를 따라 자소크 철학단 육군과 아르토이트 제국 의용군은 빠른 속도로 이렘나 철랑대 의 점거지역을 재탈환하기 시작하였다. 전선의 이곳저곳을 교란 및 유린하는 작전 전개는 이렘나의 병력을 혼란스럽게 하였으며, 자소크와 아르토이트의 병사들은 고립된 이렘나의 병력들을 각개섬멸하였다.
5121년 8월 6일, 키미아 지류 폭풍작전이 종료되며 자소크 철학단은 키미아 지류의 모든 영토를 수복하였으며, 키미아 주 내부의 이렘나 점령지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작전을 진행한 아르토이트 의용군 참모는 '이것으로 키미아의 이렘나 병력은 고요해졌다.'며 작전 성공에 대한 간단한 축하의 말을 보내었다.
아피용 해역의 작전수행 불가능 통보
5122년 1월 4일, 셰스카테 평화유지군 해군은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의 점령에서 벗어난 디 주의 포젤리무스 시의 통제권을 탈취하는 데 성공하였다. 셰스카테 해군은 포젤리무스 파르티잔에게 작전 지휘권을 넘겨받아 자소크 철학단의 본토로 연결되는 돌파구[41]를 만들어내었다. 현재 셰스카테 해군은 추가적인 이렘나의 공격에 대비하여 시민들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이 포젤리무스 시 동남부의 반도를 차지하고 있는 관계로, 포젤리무스 시의 항구를 전략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포젤리무스 시의 완전 해방 소식과는 반대로, 자텐다 황금전단은 해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자텐다 황금전단 일몰함대는 전쟁 초기에 점령당한 토니겔로트 주의 베아트리체 시를 해방하기 위하여 토니겔로트 해역으로 이동하려 하였으나, 아직 남아있는 이렘나 철랑대의 선단에 가로막히게 되었다. 자텐다 황금전단 일몰함대는 자소크 철학단의 수뇌부에 작전수행불가능을 알렸으며,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였다.
- 토니겔로트 북부 해안이 정리되고, 전략적으로 이용 가능한 순간전이 기술이 있다면 작전의 재개를 생각할 수 있다.
- 라루단 연방의 영해에 통행권을 부탁한다면 대체 작전을 구상할 수 있다.
이에 자소크 철학단은 바로 다음 날(5122년 1월 5일), 자텐다 황금전단의 일몰 함대가 대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라루단 연방에게 영해 통행권을 부탁했다. 영해에서 정착하거나 정박하는 일은 없고,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한 이동상 공간적 자원을 지원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후 자소크 철학단은 일몰 함대의 절반 정도는 디 주 동부 해안을 방어하도록 하고, 나머지 절반은 토니겔로트 북부 해안으로 이동하여 북부의 추가적인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자텐다 황금전단에게 의견을 구했다.
라루단 연방의 영해 통행 허락
라루단 연방 외교성은 오늘 자소크 철학단의 자텐다 황금전단 라루단 영해 통행권을 조건적으로 수락하였다. 외교성은 라루단 국민의 보호와 라루단로의 확전 가능성을 고려하며 "라루단 연방의 영해 내에서의 교전이 생기지 않는 한 영해 통행권을 허락한다"고 발표했다.
파르티잔의 인시 시와 아그러네 시 해방
5122년 3월 16일을 기점으로, 토니겔로트 주 북부 해안과 인시 시가 해방되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이렘나 철랑대 점령지의 자소크인 파르티잔의 공로가 큰데, 자소크 철학단의 지원을 받은 파르티잔들이 이렘나 철랑대를 각지에서 공격하며 물리쳤기 때문이다.
자소크 철학단은 파르티잔에 대한 적절한 지원과 언론 작전으로 피점령지의 자소크인들의 전의를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하였으며, 디 주 동부에서 일어난 파르티잔들을 안전하게 구출하여 이렘나 점령지 자소크인들의 신뢰를 얻어갔다. 이로 인해 자소크는 타시스로 향하는 길목과 토니겔로트 주 연해 지역을 해방시켰으며, 아바바 시와 윌라이히 시의 진입로를 확보했다고 한다.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에 대항하기 위해 일어난 파르티잔의 세는 거세지고 있으며, 이렘나 철랑대는 파르티잔의 공격과 사보타주로 인해 전쟁 수행능력이 감소하였다. 특히나 디 주 북부 아그러네 시의 파르티잔은 자소크 맹세기사단과의 전투에서 거의 승리하여 시를 탈환하기 직전의 상황을 만들어내었다.
이렘나 철랑대는 이전과는 다르게 해안선을 쉽게 내주었는데, 아마도 몇개 선단의 귀국 이후 잔존 선단들이 자소크 동북부 해안 전체를 방어할 수 없을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쟁 초기에 점령된 4개 섬과 윌라이히 시, 타시스 시에서는 그 어떤 파르티잔도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
이렘나군의 후퇴와 베아트리체 시 파괴
자소크 철학단의 육군이 베아트리체 시에 입성했을 때, 그들은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가 잿더미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베아트리체 시의 방위가 어렵다고 생각한 이렘나 철랑대가 도시를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약 1000년에 달하는 역사를 지닌 동부의 도시는 흔적을 알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다.
또한, 베아트리체 시의 피해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렘나가 도시에서 철수하면서 베아트리체 시민들을 강제로 이렘나 본토로 압송한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도시는 전쟁 전과 대비해 80%의 인구가 줄어들었으며, 단기간 내의 복구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해협의 수상한 생물체
바토르스카딘 해협에 도착한 자소크 철학단의 육군은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생명체를 발견하였다고 보고하였다. 해협 내부에 있는 생물체는 거대한 파충류의 머리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지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나 이 생물체가 어째서 이곳에 존재하는 지, 주변 지역에 어떠한 영향을 일으킬 지에 대한 정보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렘나군이 버린 드래곤
바토르스카딘 해협의 수상한 생물체는 다름아닌 거룡이었다. 비록, 물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목과 머리뿐이었지만, 고층 빌딩보다 거대한 자태는 그것의 원래 크기가 어느정도였는지만을 공포스럽게 암시하고 있었다.
이렘나 철랑대는 이번 전쟁에 북메디아에서 테이밍한 드래곤들을 몇마리 출전시켰다. 아마도, 이 개체는 그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되었다. 적대 생명체인 것을 확인한 자소크 철학단의 군인 몇몇이 발포를 하려고 했을 때, 별안간 그것이 말을 걸어왔다.
“ ...그대들은 오만한 자들이 아닌가 보군. 그래, 어디보자. 나의 날개를 찢어버린 녀석들이구나. 우리가 이 땅에 처음으로 그림자를 드리웠을 때 너희의
강철 새 중 일부가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여 내게서 하늘을 앗아갔지. 오만한 자들은 내가 더이상 날 수 없게되자 이 해협에 내 몸을 결박시켰고,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차가운 바닷물에 의해 나는 생명력을 빼앗겨갔다. 머지않아 나의 끝이 도래하겠지. 하지만, 이렇게 끝날수는 없다. 미물이여, 나에게 기회를 다오. 나의 의미를 앗아간 녀석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그 후로, 거룡은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동시에 자소크 철학단의 군인들은 이 전쟁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힘이 자신들의 손에 들어와있음을 알게 되었다.
드래곤의 복수와 안식
해협에 묻힌 거룡은 자소크 철학단 군인들의 의견을 듣더니 마음에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42]. 마치 미소를 짓는 듯한 표정으로, 거룡은 늙은 친구의 조언과도 같은 단마디의 말을 내뱉었다.
“ ... 떠나라. 3일...
”
자소크 철학단 군인들은 그 의미에 대해서 잘 알 수 없었지만, 유령에라도 홀린 듯 서늘하고 오싹한 기분이 몸을 휘감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협에 주둔하는 자소크 철학단의 군인들은 상부에 예외적인 보고를 요청하여 탈환지에서 빠르게 철수하였다. 더 있다가는 안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5124년 1월 6일, 디 주 북동부의 타시스 반도 전 지역에서 커다란 불길의 기둥이 관측되었다. 화마의 열기는 베아트리체에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다. 해당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이렘나 병력은 완전히 소멸하였으며, 생명반응은 감지되지 않았다.
윌리이히의 이렘나화
윌라이히 시로 진격한 자소크 철학단은 생각 외의 적과 마주쳤다. 바로 포터스 구사자인 자소크인들이었다. 처음에 자소크 철학단의 육군들은 변절자 윌라이히 시민들이 무장한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타시스를 상징하는 깃발을 메고 있었다.
자소크 철학단의 군인들은 타시스 시민조차도 이렘나의 앞잡이가 되어버린 줄 알고 낙심하였으나, 진실은 그것보다 더 추악했다. 이렘나 철랑대를 따르는 윌라이히 시민들이 타시스인들 중 포터스 구사자를 노예로 삼아 노예병사를 운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간간히 들리는 소문으로 윌라이히 시에 다른 자소크인들을 파는 노예시장이 열렸다고들 하였지만, 이때까지는 그저 변절자를 비판하기 위한 낭설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오늘 윌라이히 시 근교로 진격한 자소크 철학단의 육군들은, 한때 자신들의 고향이었던 곳에서 자신들과 다르지 않았던 동족의 추악한 본성을 남김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아그러네 해방
5123년 4월 7일, 극적인 군인정신을 보여주었던 자소크 육군들이 잠든 도시인 아그러네 시가 대부분 해방되었다. 자소크의 파르티잔 전법은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었으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무기 지원으로 인해 파르티잔들이 더욱 거세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아그러네 해방은 이번 전쟁에서 자소크 철학단을 도와준 대다수 세력이 만들어낸 합작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후방에서 자소크 철학단의 오염된 땅을 정화하고 있는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과 해상전투를 주력으로 하는 자텐다 황금전단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이번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은 자소크 철학단의 목표가 아그러네 시라는 것을 미리 알고 대응 작전을 준비했지만, 상당수의 이렘나 병력이 주둔하는 타시스 시와 아그러네 시를 잇는 교통망을 셰스카테의 특수작전팀이 파괴한 덕분에 이렘나의 병력들은 타시스 시에 묶이게 되었다. 자소크 철학단은 저번 키미아 지류 폭풍 작전의 승리 이후로 아르토이트 제국 의용병 참모들을 적극 기용하여 우월한 군사작전을 만들어내었으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의 수많은 해방군들은 이렘나 철랑대의 군사기술적 우위를 무색하게 만들정도로 전선을 몰아붙였다.
이번 전투로 인하여 아그러네 북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전부 해방되었으며, 자소크 철학단은 아그러네 교외지에 잠든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하였다.
남부의 구원: 작전 실패
5123년 6월 5일, 자소크 철학단은 아바바 시에서 진행된 남부의 구원 작전이 실패했음을 알렸다.
셰스카테의 평화유지군들이 발의한 남부의 구원 작전은 아바바 시의 완전 해방 작전으로, 도시의 인프라와 항구 기능을 희생하는 대신 민간인들의 생명을 구조하며 점령지를 수복하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다. 이렘나 철랑대와 교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건물을 폭파시켰으나, 항구 인근에 있었던 다량의 불안정한 마법구조체를 건드려버린 것이었다. 충격파에 의해 마법구조체는 일제히 반응하기 시작하였으며, 자소크군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거대한 폭풍이 도시 전반을 뒤덮고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을 섬멸할 수 있었으나, 자소크 철학단은 수많은 민간인 및 군인의 피해를 마주해야 했다.
아바바 시는 완전히 해방되었다.
타시스 중심 돌파: 작전 실패
5123년 8월 4일, 자소크 철학단은 타시스 시를 탈환하기 위한 타시스 중심 돌파 작전이 실패했음을 알렸다.
아르토이트 제국의 의용군 참모들이 제안한 이번 타시스 중심 돌파 작전은 자소크 철학단 동북부 최대도시인 타시스 시를 탈환하기 위해 고안된 군사작전이었다. 동북부 최대 도시를 해방하는 만큼 자소크와 지원세력측에서는 총 50만에 달하는 병력을 기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르토이트 제국의 참모들은 이렘나 철랑대의 무기와 병력을 분석하여 최적의 보고를 내놓았지만, 타시스를 고향으로 둔 장성중 일부가 이에 반발하여 작전 내용을 재대로 따르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소크 맹세기사단의 마법 기류 불안정화로 인하여 본부와의 통신이 단절되어버렸다. 그날, 자소크군 장성들은 고집에 댓가를 목숨으로 치르게 되었다.
이번 작전에서 확인된 자소크 측의 피해는 사망자 5만 1200명, 부상자 13만 1600명, 실종자 8만 3540명으로 확인되었다. 대부분의 사인은 동사또는 과다 출혈에 의한 사망이었으며, 살아돌아온 병사들은 심각한 수준의 PTSD를 앓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피를 흘린 것과 다르게, 자소크 철학단은 타시스 시 외곽조차 진입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이렘나 철랑대의 반격이 거세지는 역효과를 낳았다.
이번 작전의 실패로 자소크 철학단은 장성급 인재를 수없이 많이 잃었으며, 전선에서는 모범적인 위관급 장교들을 급속 진급시켜 사단을 관리하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렘나의 불법점령지에 대한 최종해방계획
5124년: 이렘나 병력의 동향
자소크 철학단과 셰스카테, 아르토이트 제국과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각 참모들은 전선에서 들려오는 정보를 통해 이렘나의 동향을 예측했다.
- 이렘나는 가치가 없고 지키기도 힘든 타 지역을 버릴 것이다. 대신, 윌라이히와 타시스를 방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꿀 것이다.
- 포젤리무스 시와 다른 자소크 본토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부근의 이렘나 점령지가 많지만, 되찾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 이렘나 내부의 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이렘나 철랑대의 자치지방인 셰헤카사 제도와 네라다 지방의 기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선단도 귀국한 것 같다.
- 에청, 바토르스카딘, 미노아, 아피용 4개 섬에 이렘나의 주요 군항이 있는 것 같다. 접근에는 커다란 희생이 뒤따를 것 같다.
- 이렘나의 철랑대장은 현재 아그러네와 타시스를 잇는 가도에 있는 것으로 포착되었다.
이렘나식 전투 교리 등용
5124년 5월 1일부로, 자소크 철학단의 일선부대중 일부는 이렘나 철랑대의 전투교리를 채용하기로 하였다.
퇴각 없음 및 전원 소모로 유명한 이 전투교리는 병사들에게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적에게 많은 피해를 입히는 형식의 교리이다. 이렘나식 전투 교리는 공세를 유리하게 만들 수 있으나, 적의 습격이나 특수작전에 취약하며, 병사의 인명을 경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결정이 발표된 이후, 자소크 각계에서는 "이와 같은 비인간적인 교리 채용은 스스로 저 이렘나 야만인들과 같게 되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렘나식 전투 교리의 등용으로 인해 자소크 철학단은 저항이 거센 윌라이히 시에 대한 조금 다른 작전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교리의 등용으로 인해 자소크 철학단은 승기를 굳히게 되었으나, 최전선의 수많은 인력소모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윌라이히 공세
5124년 6월 11일, 자소크 철학단은 디 주 윌라이히 시로의 진입이 성공했음을 알렸다. 윌라이히 시는 자소크 철학단을 배신하고 이렘나 철랑대의 편에 서 동족인 자소크인들을 탄압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도시이다. 이 지역의 탈환은 이렘나의 앞잡이들과 자소크 맹세기사단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한편, 윌라이히 시는 이렘나 철랑대의 주 병력들이 몰려있는 지역으로 자소크 철학단의 진격이 2년가량 정체되어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자소크 철학단의 늦은 진격은 윌라이히 시 시민들이 시를 탈출하여 타시스 시 또는 이렘나 본토로 탈출할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내었다. 윌라이히와 타시스를 잇는 윌라이히 회랑에서 최근 타시스인 노예를 데리고 탈출하는 윌라이히 시민들의 행렬이 관측되었다.
한편, 이번 전투에서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의 급속 치료소와 치유마법사들이 활약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들은 이렘나 철랑대의 독계열 마법에 맞서 전선의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덕분에 자소크 철학단의 육군은 같은 규모의 전투에 비해 사상자를 20%가량 낮출 수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시메타시스의 이렘나 지원 중단
5124년 8월 1일, 시메타시스 의 당-의회 대표 온토사 녹실드는 의회 결정에서 이렘나 철랑대에 대한 지원금 납부 중지를 결의하였다. 명목상으로는 이렘나 철랑대가 자소크 철학단에 대한 전쟁으로 탄티샤의 평화를 깨트렸기 때문에 시메타시스의 지원 자격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실상은 이렘나 철랑대가 전쟁에서 패배하여 가고 있기 때문에 전후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다만, 시메타시스가 이렘나 철랑대에게 지원금을 주었다는 사실이 사트 전반에 알려지려면 아직 시간이 걸릴 듯 하다.
시메타시스는 5125년 1월 1일부로 이렘나 철랑대 에 대한 지원금 납부를 중지한다.
대리전의 목적을 달성한 시메타시스는 이렘나의 패전으로 인해 돌아오게 될 전쟁책임을 없애기 위하여 지원금 납부를 중단하였다. 시메타시스가 지원금을 주었다는 사실은 사트에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로 인하여 자소크 철학단은 전쟁의 원흉을 찾는 데 실패하게 된다.
5125년 이렘나 병력의 동향
자소크 철학단과 셰스카테, 아르토이트 제국과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각 참모들은 전선에서 들려오는 정보를 통해 이렘나의 동향을 예측했다.
- 이렘나는 윌라이히와 타시스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방위를 포기할 것이다. 단, 이 두지역에 있어서는 다른 곳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이 예상된다.
- 이렘나 철랑대가 점령지의 시민들을 이렘나 본토로 압송하고 있다.
- 이렘나 4개 섬에 주둔하는 해상병력들이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다. 자소크 철학단에서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 이렘나의 철랑대장은 현재 타시스에 있는 것으로 포착되었다.
아르토이트 전술 교리 채용으로 인한 자소크의 전선 정리
5125년 1월 7일, 자소크 철학단은 아르토이트 제국의 전술 교리를 채용했음을 알렸다. 남메디아에서 수많은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아르토이트 제국의 전술 교리는 이전에 사용하던 것보다 전선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자소크는 처리곤란에 빠진 이렘나 전선 여러곳를 안정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포젤리무스를 포위하고 있는 이렘나 철랑대의 병력은 크나큰 위협이 되었었다. 이에 자소크 측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무기 보급과 지속적인 선전 및 고무를 이용하여 파르티잔을 일으키고, 아르토이트 제국의 아르토이트 징벌전쟁에서의 미세자리아의 친-아르토이트 부족들에게 군사 교육을 시킨 노하우를 받아 파르티잔을 전문적인 군사집단으로 양성시켜 포젤리무스를 둘러싼 이렘나의 포위망을 해제시켰다. 이렘나 철랑대 및 자소크 맹세기사단은 파르티잔을 진압하려 했으나, 셰스카테의 특수작전부대가 주요 인프라를 파괴해버린 덕분에 재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현재, 이렘나 철랑대는 자소크 영토의 대부분에서 패퇴중이다. 윌라이히 시와 타시스 시가 해방된다면 자소크 철학단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르토이트식 전술 교리 채용은 5124년에 채용된 이렘나식 전술 교리와 다르게 최전선 장병들의 인권 향상과 평균 생존일수를 늘려주었다.
윌라이히 수복
침묵: 작전 종료
5125년 1월 16일, 윌라이히 시가 자소크 철학단에 의해 점령상태에서 해제되었다. 윌라이히 시는 전쟁 초기 자소크 철학단을 배신하고 동족인 타시스 시 시민들을 노예로 삼은 전적이 있었다. 자소크 철학단은 윌라이히 시를 제압하기 위하여 역사에 다시는 기록되지 않을 정도의 무자비한 작전을 준비하였다. 작전 보고서의 앞에는 단 하나의 글자가 쓰여있었다. 그것은 "침묵"이었다.
윌라이히 시 시민들의 저항은 거셌다. 자소크 철학단이 이들에게 준것이나 마찬가지인 2년의 시간은 배신자들에게 내려진 추방명령인 동시에 허락된 자비와도 같았다. 실제로, 윌라이히 시 시민들은 약자와 가족들중 상당수를 곧 점령당할 윌라이히 시 바깥으로 탈출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들을 따라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남은 자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도시에 진입한 자소크군 역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자소크의 전투부대 여럿이 도시로 진입하였을 때,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전투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시가지였다. 윌라이히 시 시민들은 건물과 건물을 이어 커다란 요새를 만들어놓았다. 그들은 곧 무너져 없어질 건물들의 누더기가 자신들을 지켜주리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했거나.
자소크 철학단의 군인들은 고맙게도 그들의 예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전투방법을 취했다. 윌라이히 시 전체를 파쇄 및 소각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수많은 포터스 구사병을 이끌고 온 자소크군은 윌라이히 시 건물들을 하나씩 부수고, 그 잔해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됨을 느낀 윌라이히 시 시민들은 부상을 입은 채로, 또는 몸에 불이 붙은 채로 잔해에서 도망쳐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소크군에게 찾아가 자비를 구했지만, 그 어느 자소크군도 그들을 살려둘 마음이 없었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와 노예도, 건물과 함께 불타고 부서졌다. 그렇게 도시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 "단지 몇몇의 잘못에 이해 도시 전체가 잔혹한 처분을 받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상의 자비를 보일 수도 없었다. 동족이라고 해서,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 — 란다 설브리트 레뇨디 풀그레임 162세[43]
이 작전을 시행한 란다 풀그레임은 자소크 철학단 육군부대 본부에 작전 성공이 아닌 작전 종료를 알렸다.
윌라이히 시는 전후 피난을 떠났던 기존 주민들이 돌아오며 다시 성장하였다.
타시스 해방
밤을 밝히는 마천루: 작전 성공
5125년 3월 16일, 윌라이히 전선을 완벽히 정리한 자소크 철학단은 이렘나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이 점거한 마지막 대도시인 타시스 시의 진입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타시스 시의 상황은 다른 지역과는 확연히 달랐다. 타시스는 자소크의 동북부 최대 도시로 이렘나 철랑대에게 점령당한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높은 마천루가 바다를 향해 병풍처럼 솟아난 도시였다. 이렘나의 침공 이후로 마천루는 타시스를 방위하는 방위탑으로 전락하였고, 타시스를 향한 공세는 마천루의 존재에 의하여 가로막혔었다.
이에 난관을 겪고 있던 자소크 철학단은 다른 접근방법을 사용해보기로 하였다. 마천루 확보라고 이름지어진 작전은 말 그대로 마천루를 선취적으로 제압하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에는 몇가지 문제사항이 있었다.
- 이렘나의 대공능력에 비해 자소크의 공군이 턱없이 약했다. 자소크의 공군은 전쟁 초기인 5104년~5109년 사이 이렘나의 와이번과 대공 마법에 의해 커다란 손실을 입은 이후로 현재까지 파르티잔 지원이나 히트 앤 런과 같은 소규모 또는 특수작전밖에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병력을 수송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안전하게 호위할 무장병력은 없었다.
- 다음으로는 마법 기류의 문제였다. 이렘나의 마법 구사자 식별 방법은 공기중의 마법 기류를 읽는 것으로, 마법 구사자인 대상은 예외없이 식별되었다. 이렘나 본토에서는 기류를 방해하지 않고 행동하는 방법이 널리 퍼져있다고 하나, 작전을 수행하는 자소크측에서는 이것을 알 수 없었다. 마천루를 제압하고 전략적으로 운용하려면* 포터스 구사자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이 간다면 쉽게 적발당할 것이 분명했다.
이 작전이 실패한다면, 자소크의 소중한 인적 자원을 잃을 뿐만 아니라, 공중으로의 작전이 더이상 가능하지 못하게될 여지또한 있었다. 작전의 시행 가능성 여부를 두고 자소크 철학단 방위부에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한 참모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날씨에 관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주위를 어지를 것이면 전부 어질러놓는 것이 깔끔해 보인다." 자소크 측에서는 이 아이디어를 고안한 참모를 찾으려 하였으나, 참모는 어느새 모습을 감춘 이후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달 모양의 작은 팬던트를 들고 있었다고 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찾아낼 수는 없었다.
참모의 조언으로 자소크 철학단은 작전의 준비를 위하여 배경작업을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포터스 구사자들을 모아 도시를 가득 덮을 안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렘나 역시나 이것이 군사작전인 것을 간파하고 도시 주변에 한파 마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소크가 마천루를 노렸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조차 못했다.
지면에 안개와 서리가 깔린지 5일이 되던 날, 타시스의 마천루를 제압하기 위한 특수부대가 타시스 인근의 비행장에서 떠났다. 무장병력과 포터스 구사자로 이루어진 특수부대는 타시스의 마천루 숫자인 16과 같은 수의 헬리콥터에 나누어 탔다. 지휘관은 펠레마 헤르네디아로, UMG에서의 작전과 자소크-이렘나 전쟁의 전방 사단에서 지휘를 맡은 경험이 있는 군인이었다. 펠레마는 지상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지휘하는 사단이 타시스에 진입할 때를 위하여 작전에 직접 참여하기로 하였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헬리콥터는 땅에서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안개가 걷혔을 때, 자소크인들은 이렘나의 점령 이후로 단 한번도 빛나지 못했던 마천루가 찬란한 금빛 물결을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의 수호자: 작전 성공
5125년 7월 17일, 자소크 철학단은 3개월에 걸친 시가전을 끝냈다.
마천루의 확보와 동시에 시작된 시가전은 특이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마천루를 장악한 자소크의 군인들이 포터스 구사자들을 이용하여 간이 순간전이 마법회로를 작성한 것이었다. 이에, 전투는 마천루에서 내려와 지상을 확보하려는 자소크군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이렘나 병력의 결투가 되었다. 타시스 탈환 작전인 하늘의 수호자가 개시된 것이었다.
이렘나 철랑대의 틸루크레아 구사자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소크군을 막기 위해 마천루를 향해 마법을 전개하였으나, 오히려 도시를 지키고 있는 한파 마법이 약해져버려 도시 바깥에서 대기하는 자소크군들의 침투를 허락해버리는 모양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자소크 철학단은 마천루에 보낸 병력을 낙하시켜 적의 중요한 시설과 병력을 제거하고, 지상군을 사용하여 점령지들을 잇는 전술을 취하였다. 해방군을 기다리는 타시스 시민들의 자발적인 봉사도 전쟁 수행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반면 이렘나 철랑대는 자소크의 암살단에 의해 시가전이 시작되기 전 수뇌부를 상당수 잃었으며, 이로 인해 지휘 체계가 일관되지 못하게 되어 전력상의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일부는 타시스의 시민들에게 얻어맞아 죽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하늘의 수호자라는 이름과 걸맞게, 타시스 시 곳곳에서는 하늘에서 낙하한 군인들이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시작하였다. 마천루를 중심으로 자소크는 도시 안팎을 연계시켜 화망을 좁혀나갔고, 건물 벽을 타고 오르내릴 수 있는 경장비들을 이용하여 산발적인 전투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였다.
고층 건물의 파괴된 부분과 도심 곳곳을 잇는 지하도에서조차 이렘나의 작은 요새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이미 승리한 듯 진격하는 자소크군과 지원세력의 군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자소크 공군들이 마천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며 이렘나 병력들이 점거한 지역에 폭격을 퍼붓고, 지상병력들은 그에 맞추어 구역과 구역을 해방시켰다.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의 병력들은 자소크의 공세에 의해 점차 도시의 북부 해안가로 밀려나게 되었다.
침략자들에 의해 부당한 점령이 시작된 지 열 해가 채 지나기 전, 타시스의 시민들은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다.
승리의 날
밤을 밝히는 마천루와 하늘의 수호자 작전 수행하여 타시스를 탈환에 공을 세운 자소크측의 지휘관 펠레마 헤르네디아는 부서진 달모양 팬던트를 손에 꽉 쥔 채, 타시스 광장 한 가운데에서 지친 병사들과 시민들을 모아놓고 짧은 연설을 했다. 그녀의 한쪽 눈은 격렬한 전투에 휩쓸려 사라졌지만,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녀와 비슷한 지경이었을지도 모른다.
“ 자소크의 모든 사람들이여, 우리는 세상의 중심을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 끊임없는 전쟁의 포화와 저 끊임없는 살육의 현장에서 자소크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이 의미없는 죽음을 맞이했습니까? 아니오.
그들은 우리가 오늘 맞이할 밤과 내일 맞이할 아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것입니다.
굴복하지 않는 지성의 힘으로 다시한번 세계로 나아갑시다.
자랑스러운 자소크의 이름으로 고통받는 우리의 형제들을 향해 나아갑시다
이 땅에서 침략자들이 모두 사라질때까지.”
이 모습은 종군기자에 의해 사진이 찍혀 자소크의 여러 매체에 실리게 되었다. 그날, 자소크의 시민들이 본 것은 타시스의 부서진 도시도, 다친 병사들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들은 이 오랜 전쟁의 끝이 승리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21년에 걸친 자소크-이렘나 전쟁은 타시스 탈환을 끝으로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렘나 선단의 퇴각준비
타시스 전투가 끝난 지 열흘이 못지났을 때, 해상에서는 자텐다 황금전단의 일몰함대가 이렘나 철랑대의 선단들의 전투의지 상실 및 사실상의 항복을 알렸다.
자텐다 황금전단의 일몰함대는 이렘나 철랑대의 선단들이 자소크 동북부의 4개 섬을 중심으로 선단들이 이렘나 본토와 오고가며 퇴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며, 더이상 교전을 할 상황이 되지 않는다고 전하였다. 자텐다 황금전단은 지상병력의 부재로 4개 섬을 탈환하지는 못하였지만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며, 무역적 특례를 통해 전쟁 수행에 도움을 준 자소크 철학단과 영해를 허락한 라루단 연방에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한편, 이렘나 철랑대는 얼마 남지 않은 점령지에서 잔존 병력들의 귀국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후
자소크 철학단의 승전 선언
VANZIÈ 승리하였다
베시 오마 철사는 오늘 오전 11시 세베너르티에서 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 오늘(5125년 5월 7일) 새벽 2시 41분, 이렘나 철랑대의 철랑대장은 철각에서 자소크 철학단의 모든 육군, 해군과 비군에 대해 항복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지난 5104년 포고되었던 전투는 오는 5월 8일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종료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렘나와 자소크는 이것으로 공식적인 전투를 종료합니다.
” — 베시 오마
이후, 이렘나 철랑대와 자소크 철학단은 공식석을 통해 시간을 가지어 전쟁으로 인한 피해 복구와 기타 전후 처리에 대한 합의점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자소크 철학단에서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제시한 후 공식적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일 오후, 하키엘러시아와 올리뵈, 머제추피, 차르비아, 라시디 캬흐페, 디, 포젤리무스에는 약 6시간동안 전몰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시공간이 마련되었다.
포젤리무스 조약 발효 및 종전
자세한 내용은 포젤리무스 조약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25년 8월 10일, 자소크 철학단 과 이렘나 철랑대는 포젤리무스에 모여 이렘나의 항복 후 이렘나가 해야 하는 배상과 전후 복구 등 총 102 항목에 대한 합의를 진행했다. 이 합의는 5125년 8월 10일부터 발효되며,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조약은 이렘나 철랑대에 대한 국사적 규제, 전쟁주체의 영토 및 병력 신원 인도, 이렘나 철랑대에 대한 군사 및 행정부 국가감독 기구 설치, 배상명령, 무역에 대한 조약, 내정 간섭에 대한 조정, 납치자에 대한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렘나 철랑대는 이 조약을 통해 투타여르 데 자소크 동부의 4개 섬[44]에 대한 주권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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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크 철학단의 조약 위반 및 4개 섬 수복
5126년 2월, 베시 철사는 토니겔로트-디 주의 4개 섬을 무력으로 점거 시도했다. 철사는 이것이 포젤리무스 조약을 위반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됐어!”라며 무력 점거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자소크 철학단의 무력 행사로 인해 이렘나 철랑대는 모든 4개 섬에서 물러났으며, 자소크 철학단은 4개 섬을 실효지배하게 되어 실질적으로 전쟁 이전의 모든 영토를 회복한 것이 되었다.
이렘나 철랑대는 이 지역을 유지시킬 어떠한 힘도 없었으며, 자소크의 무력행사에 굴복하여 섬에 거주하는 자소크인들을 데리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렘나 철랑대는 자소크 철학단에게 이 사실을 항의하려고 하였으나, 국내에서 일어난 여러 무력시위체의 준동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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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시 철사의 사퇴
5126년 7월, 베시 제일철사는 내년 에빈카바스를 통해 새로운 제일철사를 선출하고자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철사가 사퇴를 하게 된 원인으로는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민간의 피해와 포젤리무스 조약의 위반에 의한 정치·윤리적 부담이 가장 클 것으로 예측했다.
4개 섬 탈환 당시 철학자들 중에서는 이렘나가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포젤리무스 조약을 통해 이렘나 철랑대의 섬에 대한 주권을 이미 인정한 바 있다며, 4개 섬을 탈환하려고 하는 것은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는 일이라고 우려를 나타낸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베시 철사는 이에 대해서 납득 가능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일 있다.
베시 철사의 사퇴 소식에 대해 베시 철사의 행정평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주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토니겔로트 주와 디 주에서는 “보통이다” 혹은 “약간 긍정적이다” 등의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시 철사는 사퇴 후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본인에게 제일철사는 앞으로 더욱 과분한 자리가 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 사회의 반응 및 헤프닝
이렘나 코스모주의 시위체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게 고합니다. 우리는 이렘나 철랑대의 코스모주의 무력시위체입니다. 이렘나 철랑대는 우리들의 사상이 발을 내리기 어려운 곳 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전 사트에서 가장 악랄한 신분제를 가진 곳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발 밑에서 1700년을 노예같이 생활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의 멍에를 벗어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렘나 철랑대의 빛나는 별, 곧 철랑대장을 암살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땅을 해방하기 위한 무력 시위 및 필사의 결투[45]를 일으킬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는 이렇게 말합니다. 적의 손을 빌려 약해빠진 아군을 치라! 우리는 철각[46]이 약해지기를 노렸고 지금이 그 기회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한가지 있습니다. 미래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소크 철학단의 무기를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이곳에 남았지만, 그들 역시 자소크 철학단과의 전쟁에 반대합니다. 연합을 맺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시겠지만, 그들 역시나 우리가 약해지기를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반란 진압을 명분으로 공격할 것이 예상됩니다. 이들의 존재 때문에 현재로써는 작전의 시행가능성조차 낮게 여겨집니다.
이렘나 철랑대가 전쟁에서 힘을 어느정도 소모했을 때, 우리는 일어날 것입니다. 일부의 성공이라도 바라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인터네셔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5107년 7월 2일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5107년 5월 4일,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측은 이렘나 철랑대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규탄하며, 코스모주의 이렘나 시위체를 필두로 이렘나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대응할 것이라 밝혔다. 또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측은 전세계 사회주의자로 구성된 사회주의 의용군을 자소크 철학단에 파견하는 것을 제안했고, 전세계 사회주의 정당과 사회주의자들에게 참여를 독려했다.
이에 자소크 철학단 측은 중립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자소크 철학단은 국외에서 당장 중요한 것은 군사적 도움보다 이렘나와의 전쟁에 대한 인지와 시메타시스의 야욕을 알리는 것이라며, 이렘나 철랑대의 그림자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시메타시스의 UMG 지배 욕구를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
셰스카테
5117년 2월 8일, 셰스카테의 대통령은 연설 중, 자소크-이렘나 전쟁에 대한 말을 꺼냈다. 약 6분동안 이렘나 철랑대의 침략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말을 했고, 이 연설은 셰스카테 국내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 자소크 철학단과 이렘나 철랑대의 전쟁은 명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비록 자소크 철학단이 UMG를 강탈하려 시도한 사실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침략은 고기가 탔는데도 불구하고 그 고기에 용암을 부어버리는 수준입니다. 평화를 구축할 수 있어도 그것을 침략으로 해결하려는 행동은 결코 옳지 아니하고...(중략)...
”
셰스카테의 극우파들은 이 연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셰스카테 대통령을 퇴진시키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대다수 셰스카테의 국민들은 그 연설을 좋게 바라보고, "용감하다", "속이 시원하다" 등 긍정적인 의견을 표현했다.
이렘나의 응답
이에 당년 4월 10일, 이렘나 철랑대의 철랑대장 키라야 사헤사카할누르가 이에 대한 답신을 전송했다.
“ 제 672대 철랑대장이자, 파랑이 비추는 별자리의 계승자 키라야 사헤사카할누르가 셰스카테의 지도자에게 마땅이 알려야 할 바를 전하노라.
‘겨누어진 검에 서린 이야기는 곧 적의 과오’ 기사단은 이유없는 전쟁을 하지 않노라. 우리가 전쟁을 하는 이유는 성스러운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이다. 자소크 철학단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사트를 구원해야 할 의무를 우리는 가졌노라.
자소크 철학단, 곧 이렘나의 영속의 숙적이 세계의 중재자와 같음을 부정하지 않겠노라. 그들은 중재자를 자칭할 권세가 있도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중재의 뒤에는 어두운 침략의 야욕이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느니라.
5064년에 발발한 남극해 무력시위에서 자소크 철학단은 세력균형 위한다는 명분으로 조약국을 배신하고 전 사트에 걸쳐 수많은 사상자를 만든 흉내이리를 지원하여 앙둔 제국과 한카 교회국을 환난에 이르게 하였다. 또한, 여러 조약을 통해 세력권을 사트의 전반으로 확장시키고 있도다. 레니스카의 자소크 점령지[47]또한 그들의 무자비한 확장의 결과라고 생각하노라. 그들의 입은 평화를 말하지만 혓바닥은 야욕에 적셔져있노라. 걷보기에는 화친을 주장하면서도 뒤로는 '중재'라는 이름의 칼을 꽂는다. 그것이 그들의 방법이고, 이시간에도 그들은 다음 '중재대상'을 찾아다니고 있겠지.
그러니 위대한 셰스카테와 지도자들이여, 우리의 성스러운 길에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을 요구하노라. 우리는 그대가 자소크 철학단의 간계에 희생당하기를 원치 않노라. 우리는 마땅한 성스러움으로, 마땅한 대의로, 마땅한 힘으로 그들을 저지하고 있도다. 앞서 나의 전임자, 곧 이렘나 철랑대의 철랑대장 2명은 이번 전쟁으로 인하여 별자리와 하나가 되었다.[48] 장미꽃을 가득 품은 그들의 치맛폭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겠노라.
”
자소크 외국어대학
5119년 4월, 올로니 전투의 참상이 자소크 철학단 전역에 알려졌다. 자소크 철학단의 국민들과 희생된 자소크군의 유가족들은 이에 도탄을 금치 못하였으나, 이로 인해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본 또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자소크 외국어대학의 키비르쟈어학과 재학생들이었다.
키비르쟈어[49]는 이렘나어를 다르게 부르는 명칭으로, 키비르쟈어학과는 사실상 이렘나어학과나 마찬가지이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이렘나 철랑대에 극도의 증오를 품은 자소크인들 몇몇이 이렘나와 하등 상관이 없는 키비르쟈어학과 재학생들에게 분풀이를 한 것이다. 범인들은 키비르쟈어학과 학생들의 강의 건물에 불을 지르고, '자소크의 배신자들은 죽어라'라는 말을 학생들 앞에서 외치며 각종 쓰레기들을 던졌다. 이와 같은 만행으로 인해 키비르쟈어학과 학생들 일부는 바깥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시메타시스
5118년 2월 6일, 시메타시스의 당-의회 대표 온토사 녹실드는 이번 자소크-이렘나 전쟁은 명분이 강력하지 않은 전쟁이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사실상 이렘나 철랑대에 대한 비판으로 보이나, 이렘나는 이에 대하여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와 동시에 자소크 철학단이 UMG를 강탈하려 시도한 것은 맞지만, 시메타시스는 진리를 추구하는 국가이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마냥 지지성명을 보내기는 어렵다. 이렘나와 자소크간의 평화 협상을 감독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시메타시스 의회는 동시에 현재 탄티샤 대륙의 전쟁을 종식시켜야 할 의무는 자국에게 있다며 전쟁중인 두 국가에게 전쟁을 종료할 것을 요구하였다. 특히나, 이렘나와 자소크 맹세기사단이 자소크인에 대한 가혹행위를 멈추고 자국민 자격으로 대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일부 의원들은, 자소크 맹세기사단이 좋지 못한 행위를 많이 하고 있으나, 정부가 세워진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며, 자소크 맹세기사단 역시 자소크인들의 필요에 따라 세워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또한, 시메타시스가 관할하는 지역에서는 자소크 철학단과 이렘나 철랑대 모두 무장을 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였다.
자텐다 황금전단
5124년 6월 1일부로, 자텐다 황금전단 은 자소크 철학단의 전후 복구를 지원하기 위한 사업 우선권을 가져왔다. 그 대가로, 자텐다 황금전단은 자소크 철학단에게 전쟁지원금을 추가로 납부하였다. 자텐다 황금전단은 이로 인하여 전후 자소크 동부 지역의 경제권을 손에 넣게 되었다. 또한, 자소크 철학단은 자텐다 자본으로 인하여 전쟁 피해를 쉽게 복구할 수 있었다.
결과
자소크 철학단은 수많은 희생을 안은 채 승리하였다. 5124년 8월 10일, 포젤리무스 조약이 체결되며 전쟁이 종료된다.
영향
자소크 철학단 측
자소크 철학단
자소크 철학단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었으며, UMG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자소크 철학단을 도우려는 국가가 사트 전반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어 자소크 철학단의 대외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자소크에게 득보다 실이 더 큰 전쟁이었는데, 사트 전반에 영향력을 투사하던 자소크 철학단의 헤게모니아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자텐다 황금전단
자텐다 황금전단은 자소크 철학단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였다. 이렘나 철랑대와의 사이가 나빠졌을 지는 몰라도, 자텐다 황금전단은 탄티샤의 자소크 철학단의 시장에 더욱 깊숙히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전후, 자텐다는 자소크 동부의 경제권을 대부분 장악하였다.
아르토이트 제국
아르토이트 제국은 군사기술적 우수성을 전 사트에 입증시켰다. 아르토이트 제국의 도움으로 인해 자소크 철학단은 더 많은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추측된다.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
세멘티-네라크뤼스 공국의 세멘티인들은 전장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세멘티인 치유부대들의 헌신은 자소크측 병사들의 희생을 막아주었다.
셰스카테
셰스카테또한, 자소크 철학단과의 관계에서 이점을 얻었다. 셰스카테 특수작전부대의 활약은 전 사트에 셰스카테의 이름을 알리기에 충분하였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북메디아를 비롯한 사트 전반에서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었다. 특히나, 초강대국인 자소크를 잠재적인 우호국으로 두게 된 덕분에 사트 여러 지역에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전쟁중 자소크 철학단에서의 개혁을 이끌어낸 것은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약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렘나 철랑대 측
이렘나 철랑대
이렘나 철랑대는 시메타시스의 장기말로 쓰였다. 인구의 5%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소모되었으며, 이것은 명분이 약한 전쟁에 대한 사회 전반에 회의감을 가져다주었다.
한편으로는 자소크 철학단에서 끌려온 노예와 피랍자들로 인하여 이렘나 철랑대의 기술이 발전되었다. 이렘나 철랑대는 전후 책임으로 인해 극심한 내부 분쟁을 겪었으며, 자소크 철학단이 이렘나령 4개 섬을 강점할 때도 저항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렘나 철랑대의 철랑대장의 권위는 실추되었으며, 전후 철랑대장의 평균 수명은 1년 이하로 줄어들었다.
자소크 맹세기사단
자소크 맹세기사단은 완전히 멸망하였으며, 부역자들은 대부분 자소크 철학단에게 체포되거나 탄티샤의 바다를 떠도는 신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시메타시스
시메타시스는 이번 전쟁으로 인하여 UMG에 대한 완벽한 통제권을 획득하였다. 당-의회 대표 온토사 녹실드는 시메타시스의 영웅으로 추대받았으며, 시메타시스의 엘리트주의가 가속화되었다.
전쟁 관련국 이외의 국가
라루단 연방
라루단은 자소크 철학단에게 전쟁 수행의 도움을 주어 호의를 쌓게 된다. 또한, 자텐다 황금전단의 자소크 동부 재건에 의한 낙수효과를 받기도 하였다.
UMG
UMG는 완벽하게 시메타시스와 합병이 되었다. 잔존한 자소크계 주민들 역시 시메타시스의 새로운 국적을 받아들이게 된다.
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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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게
각주
- ↑ 2024년 12월 21일 18시 10분 45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 ↑ 5121년 5월 12일~
- ↑ 자소크 철학단에 세워진 이렘나 철랑대의 휘하기사단이다.
- ↑ Vex Elada Homa XIII, 제일철사
- ↑ Vartemis Adl Krauc II, 방어청장
- ↑ Valedies Kront Entø Quinoksar XCIV, 레닌 함대 제독
- ↑ Felema Sarnikxÿs Hernediea XXI, 자소크 육군부대 소속 군인
- ↑ Mektin Syndreie Queityn Morgos XXV, 자소크 육군부대 소속 군인
- ↑ Elkan v'Iysnachiylkapezech, 670대 철랑대장
- ↑ r'Anagat s'Ertzyacha, 671대 철랑대장
- ↑ k'Iyraya î'Kesakachalnurr, 672대 철랑대장
- ↑ k'Asie e'Hilginape, 689대 철랑대장, 자소크-이렘나 전쟁의 패배조약을 채결한 이후 귀국하지도 못한 채 암살당했다.
- ↑ Zermonich Hontosa Biconium Noksilt XLVI, 당-의회 대표
- ↑ 플게뢰그 노릴고르크 프로마시 로더여 56세, Flgerøg Norîlgorque Promasie Lodŷÿ LVI
- ↑ 물론, 체급상으로는 이렘나 철랑대가 자소크 철학단에 비하면 매우 형편없는 상태이다.
- ↑ 이것은, 자소크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절멸시킨다는 뜻이 아닌, 동화나 지배의 방법을 사용하여 자소크 문화 자체를 사라지게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 ↑ 출처가 추적당한다면 전 사트적인 비난에 당면할 수 있는 자금, 대부분은 비윤리적인 시메타시스의 실험의 결과를 팔아치운 결과이다.
- ↑ 서부 기사단 지역, 세셸브 지방 소속
- ↑ 이것으로 자소크 철학단의 군대는 시메타시스의 UMG 장악을 의심한다.
- ↑ 시메타시스 당·의회 대표. 사실상 시메타시스의 수장이다.
- ↑ 시메타시스는 과두정으로, 당의 대표는 의회의 대표이며, 곧 국가의 수반이다.
- ↑ META: 자소크 철학단은 지금까지 시메타시스의 UMG에서의 행보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의심하는 등 시메타시스의 욕심에 대해 처음 들었다,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전세계적으로 이렘나 철랑대와 시메타시스에 대한 비판 여론을 형성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 ↑ 카르돈 막스냐스 엘토푀 길로만 4세 Kardon Maksnaech Eltofø Giloman IV
- ↑ Chardem, 불을 일으키는 주문. 파르티잔은 이 주문을 사용하여 피격자에게 내상을 입힌 것으로 추정된다.
- ↑ 생포되었던 군인의 후방배치는 좌천이 아닌 해당 군인의 신체/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권유되는 조치이다.
- ↑ Mektin Syndreie Queityn Morgos XXV
- ↑ 5110년 자소크를 배신하고 이렘나측으로 전향함
- ↑ 672대 철랑대장 키리야 사헤사카할누르(k'Iyraya î'Kesakachalnurr)
- ↑ 점령된 각 지역의 분열을 조장하는 목적으로 보인다.
- ↑ 철랑대장은 이렘나 철랑대의 수반이 되는 기사로, 전쟁의 선봉에서 싸워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번 전투에서 672대~677대 철랑대장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 ↑ 이렘나의 무력시위체로, 기술을 통한 발전을 추종한다. '자소크의 우월한 기술력'(자소크가 아니다)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분파이다.
- ↑ 이렘나의 무력시위체로, 선민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다. 이렘나가 전쟁을 일으켰을 때부터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다.
- ↑ 남 크리할니킬 기사단의 선단이다. 적은 수이지만 수많은 전쟁에서 공로를 세워왔다.
- ↑ 서부 기사단 지역의 선단이다. 구 엘레르디 왕국의 마법생물과 북메디아 산업단지에서 공여받은 뛰어난 기술의 무기들을 사용한다.
- ↑ 디 주의 도시로, 올로니 전투로 인해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곳이다.
- ↑ 미래주의자들과 코스모주의자들의 준동을 막기 위하여 크리할니킬 전쟁선단과 세셸브 전쟁선단이 귀국하였다.
- ↑ 윌라이히 사람이란 표현은 윌라이히 시가 자소크를 배신한 이후 이 명칭은 이렘나의 앞잡이라는 멸칭이 되었다.
- ↑ 페르츠프즈타메다는 포젤리무스의 이렘나식 표현이다.
- ↑ Sørdy Exeldiud Tinios XXXII
- ↑ 정확하게는 자소크군이 주둔하는 지역
- ↑ 자소크 철학단 군대는 거룡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Landa Exylbrit Renödie Fulgreim CLXII
- ↑ 에청, 바토르스카딘, 미노아, 아피용
- ↑ 지방, 종단, 무력시위체들이 벌일 수 있는 합법적인 내전이다. 타 지방이나 종단, 무력시위체를 제압하고 황폐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전통적인 예법이다.
- ↑ 철랑대장의 거처, 이 글에서는 문맥상 철랑대장의 권위라고 해석된다.
- ↑ 노베몰마디아와 모하지 공화국을 가리킨다
- ↑ 이렘나 철랑대의 철랑대장은 전쟁의 선봉에서 싸워야 할 의무를 가진다.
- ↑ 이렘나어는 키비르쟈어, 레네어, 이렘나어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 ↑ 제로켄과 함께 작성
- ↑ Sakura, 렌디, 네오스티그민, 스치와 함께 작성
- ↑ 김현제와 함께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