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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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과 고통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이오?
” — -신원 미상, 대파랑 당시 파랑기병대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며
3109년부터 3279년까지 북메디아 전역을 휩쓸었던 문명적, 환경적 재해인 대파랑에 대한 문서이다. 수생정령 계통인 파랑 기병대에 의해 이 시기동안 3500만~7000만의 희생자가 생기고 수많은 문명이 멸망하였다.
3276년 제 4차 메디아 해협 공세의 패배로 이들은 구심점을 잃고 와해되기 시작했으며, 3년만에 멸망하고 만다.
대파랑의 언어별 명칭은 다음과 같다.
언어 | 명칭+ |
---|---|
자수르만어 | دارىو جين |
헤이어 | Januginin(국내표준) Dzanujinin(국제표준) |
화칸어 | Furofummamunzu |
한국어 | 대파랑 |
영어 | Great Blue |
일본어 | 大波浪 |
안드로어 | eovkfkd |
메다어 | urpfyfa |
파랑 기병대의 시작
파랑 기병대를 이루는 수생정령들은 레나루 호수라고 하는 북메디아 중부의 거대한 호수에 무리를 짓고 사는 수생정령이었다. 이들이 파랑 기병대를 이룬 이유는 현재로써는 불명확하지만, 자소크의 학자들에 의하면 주변 지역의 개발과 문명의 간섭에 따른 생활권의 위협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추측된다.
3109년 2월 7일. 제 1대 사데나라고 불리는 우두머리에 의해 수생정령들은 레나루 호수에 결집한다.
전개
대파랑의 시대적인 구분은 사데나의 교체기를 통해서 구분짓는다. 총 7명의 사데나가 있었으며, 메디아 해협 공세부터 와해되기까지의 기간을 포함한 8개의 기간으로 나눈다.
서장(3109년~3127년)
제 1대 사데나 시기는 앞으로의 170년간 북메디아 전역을 뒤덮을 대파랑의 시작을 알리는 전쟁의 호각과도 같은 시기였다. 평화로웠던 북메디아 중북부의 도시들은 이들의 진격 앞에서 짓밟히고 만다.
바니홀 점령(3113년)
기르긴-신더의 종말(3115년~3122년)
가베 제국의 역사적 국가 기르긴 왕국과 신더 왕국이 파랑 기병대의 습격을 받아 멸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북메디아 서부는 파랑 기병대의 공격에 완전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파랑-벨도시아 전쟁(3121년~3122년)
북메디아 북부의 벨도시아는 파랑 기병대의 급습을 받아 사라진다. 그러나 이 국가가 실존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현재, 벨도시아는 칼르신 공화국의 위치에 있을 것으로 추측되나, 역사학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카닌의 재해(3123년)
카닌 변경백국이 파랑 기병대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 사건이다.
폭풍우 시기(3127년~3138년)
제 2대 사데나 시기는 이들의 공포스러운 공세로 유명했던 시기이다. 대부분의 문명은 항복 아니면 죽음을 강요받았고,[3] 이 시기는 9년밖에 안될 정도로 짧았지만, 북메디아 중부의 주요 도시국가들의 멸망을 가져왔다.
레단티스의 착오(3128년~3129년)
3128년 8월 말, 레단티스 연맹은 파랑 기병대의 최후통첩을 받았다. 그러나 파랑 기병대의 역법과 이들의 역법이 차이가 있었던 탓에 문서를 4시간 늦게 전달하고 만다. 그 결과로 이들은 멸망당하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파랑 기병대의 북부해안 침공
제 3막(3138년~3139년)
이 시기는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다. 제 3대 사데나는 즉위한지 1년만에 사망하였고, 시기의 특별한 업적도 없기에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다.
대해역(3139년~3172년)
제 4대 사데나의 시기는 파랑 기병대가 가장 많은 확장을 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름이 붙게 되었다.
파랑-솔브렌 전쟁(3141년~3143년)
북메디아 중부의 거대한 왕국이었던 솔브렌 왕국은 2년동안 이들의 공세를 막아내었다. 결국 솔브렌은 함락되었으며, 이들의 문명은 파랑 기병대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 나는 어려서부터 솔브렌에서 자라왔다. 솔브렌의 거대한 평야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둥지를 허락했고, 우리는 이곳에 도시를 이루었다.
가뭄이 심하게 들어도 솔브렌은 마르는 일이 없었으며, 폭풍우가 쳐도 우리들의 평야는 한번도 물에 잠기지 않았다.
우리는 솔브렌의 품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꿈을 꾸었다.
그러나 지금 내 발밑에 찰랑이는 것은 질척거리는 습지.
발 밑으로 물이 찰박일 때마다 알 수 없는 공포가 왈칵거린다.
우리를 품어낸 솔브렌은 익사했고, 살해자들의 파랑이 이곳을 향한다.
공포에 마땅한 주인이 있다면 저들 앞에 있는 우리를 칭하는 말이 되겠지.” — 솔브렌 폐허에서 발견된 기록, 아미르비아 탐험대 북메디아 원정에서 발견, 소우르크 번역
바산도라 협곡 방위전(3155년)
시웬 반란(3159년)
3159년, 북메디아 중남부의 요새 왕국, 시웬 왕국에서 공포에 빠진 사람들이 주전파 왕정을 몰아내고 파랑 기병대에게 복속을 주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을 몰아내었으나, 국가의 방위가 약해진 것을 눈치챈 파랑 기병대의 급습으로 복속을 주장하던 시민들까지 학살당한다.
키네 전쟁(3163년)
셀론드 멸망(3164년)
북메디아 서부 해안의 셀론드 신성공화정은 이들의 공격에 의해 15일만에 멸망하고 만다.
셀론드 신성공화정은 소노르인과 동류의 문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세이안 왕국의 봉신국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들의 수도는 현 자텐다 황금전단의 셰켄트바르너셔트였다.
셀론드 신성공화정은 패배하였지만 파랑 기병대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였기에 학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3185년 이후 이들의 기록은 사라지게 된다. 파랑 기병대의 점령하에서 피지배상태에 놓인 것도 이유라고 보면 이유일 수 있겠으나, 실종 이전의 비정상적인 집단 이주와 카둔계 종족인 솔니와의 조우와 같은 수상한 일들이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서부의 참극(3165~3172년)
파랑 기병대의 북부해안 원정
붉은 해일(3172년~3217년)
제 5대 사데나의 시기는 전체 시기중 가장 희생자의 시기가 많았던 시대이다. 제 5대 사데나는 주변 국가들에게 항복이라는 선택지를 주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엘레르디 전영(3188년~3214년)
파랑 기병대는 3188년 북메디아 북부의 엘레르디 왕국과 조우하게 된다. 다른 국가와 다르게 엘레르디 왕국은 파랑 기병대의 공세를 버텨냈으며, 끝까지 살아남게 된다.[4]
라쿠텐보츠 전쟁(3173년~3181년)
북메디아 서부의 라쿠텐보츠 자유도시연합은 세이안 문명의 하위 문명으로 구 셀론드 신성공화정과 세이안 문명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도시연합이었다. 대파랑의 마수는 이곳에도 미쳐왔으며, 세이안 문명의 사실상-봉신국이었던 라쿠텐보츠 자유도시연합은 이 전쟁으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 라쿠텐보츠 자유도시연합은 브레슈-펜누카바허티 권역 구분과 거의 일치한다.
서머라 전투(3177년)
서머라 전투는 3183년에 일어난 파랑 기병대와 세이안 제국의 전투이다. 서머라 전투는 북메디아 서부해안 전역이 파랑인의 손에 떨어지게 된 전투이다. 서머라(자텐다어: Sómóra)는 현재 AR 오닉서커트의 브레슈-펜누카바허티 권역, 헤저니서트 주에 소속된 작은 마을이며, 세이안 식 명칭은 시모로쿠(자텐다어: 下六)이다.
전투 이전 각 진영의 절대적인 상황만을 놓고 보았을 때, 세이안 제국은 파랑 기병대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놓여있었다. 다시 말해, 세이안 제국의 승리는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파랑 기병대는 북메디아의 전역을 정복하였지만, 그것은 북메디아에 기병대 세력을 이길 수 있는 통치력을 가진 국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이안 제국은 아마자쿠라와 더불어 유이하게 '강력한 행정체계가 존재하는' 국가[5]였으며, 북메디아 서부 전역의 파랑기병대는 공세종말점이 찾아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부진하고 있었다. 또한 세이안 제국의 30세기 중흥을 이끈 네마티오스 대제가 세운 장벽이 남아있는 한 세이나 제국의 안전은 보장되어있었다. 당시 세이안 제국은 영토의 동부를 차지하고 있는 라쿠텐보츠 연맹과 히테카리스 제도로 인한 마찰을 지속적으로 빚고 있었다. 파랑 기병대는 라쿠텐보츠 도시연합 내부에 세이안 제국이 라쿠텐보츠 도시연합을 팔았다는 소문을 퍼트린다. 라쿠텐보츠 도시연합은 이로 인해 세이안 제국의 본대와 합류하기를 거부하였으며, 파랑 기병대는 홀로 남은 세이안 제국의 군대를 압살하게 된다. 뒤늦게 속임수에 당한 라쿠텐보츠 도시연합의 군대가 달려왔으나 상황을 타개할 수 없었고, 이들 역시 파랑 기병대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된다.
자텐다 황금전단과 그 후신인 AR 그룹은 현재까지도 '3177년 축제'라는 이름으로 당시의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세이안 멸절(3184년~3211년)
북메디아 서부 세이안 문명은 이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고, 결국 파랑 기병대에 의해 학살을 당하게 된다. 세이안 문명은 현 니커시체하르자시를 중심으로 한 문명으로 한때 인구가 1900만[6]에 달하는 국가였으나, 생존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극소수의 생존자들은 현재의 보우넨 섬으로 이동하여 세이안 왕국을 세우거나, 그대로 지역에 남아 자텐다인의 노예가 되었다.
제 13차 세이안 공방전(3211년)
제 13차 세이안 공방전은 3211년 4월 13일에 종료된 세이안 제국과 파랑 기병대의 전투이다. 니커시체하르자 시라고 불리는 세이안 시는 북메디아 서부 엘프들의 중심 도시로, 32세기 기준 430만명이 사는 거대한 도시였으며, 북메디아 무역의 종점으로 불리는 지역이었다. 3181년부터 30년간 12차례의 공성 시도가 있었으나, 세이안 제국은 모두 견뎌내었다. 그러나, 3187년 4월 초순 세이안 제국을 달갑지 않게 여기던 카둔 문명 피지배민 중 일부가 세이안 시의 구조를 파랑 기병대 측에 누설시키고, 세이안인들의 마법 보호를 일시적으로 해제하는 주술의 사용으로 인해 세이안의 방어가 일시적으로 무력화되게 된다. 결국, 세이안 시는 물밀듯 쏟아져들어오는 파랑인들의 공격을 견디지 못한 채, 파랑 문명권의 도시로 편입되게 된다.
구오 전역(3197~3210년)
파랑 기병대[7]는 북메디아의 최북단에 위치한 구오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초월적인 오팔투 문명은 냉병기와 마법이 주 공격방식이었던 파랑 기병대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적이었고[8], 70000명에 달하는 사상자[9]를 낸 채 하치 지역의 공방전은 끝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팔투 1개 개체가 소멸했다.
나캉투 평원 전쟁(3209년)
푸른 태양(3217년~3249년)
제 6대 사데나의 시기는 많은국가들을 복속시켜 절대적인 권력에 오른 시기이다.
바일레반의 수치 (3223년)
북메디아 남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바일레반 왕국은 이들의 진격 소식을 듣고 3일만에 복속을 자처하였다. 다른 국가와 반-파랑 기병대 신뢰조약을 맺고 있었던 바일레반 왕국은 이때의 배신으로 인해 대파랑 종결 이후 타 국가들에게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
사사란 전쟁 (3223년)
사사란, 또는 사소브는 바일레반 왕국의 배신으로 인해 항복할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다. 결국, 이들은 대파랑의 참화에 희생당했다.
킬로브 함락 (3226년)
부토니에 계통 도시였던 킬로브가 함락된다. 이것은 북메디아의 부토니에 타 도시들의 경각심을 일으키며, 일곱 도시의 탈출을 계획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세크랄 회랑 점거 (3232년)
윈크티드 무시 (3234년)
북메디아 남부 해안의 작은 도시 윈크티드는 운이 좋게 파랑 기병대가 발견하지 못하여 참화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러한 행운은 다른 국가들의 의심을 불러오고, 대파랑이 종료된 후, 윈크티드는 다른 국가의 침공을 받아 사라진다.
로지냐드 요새 몰락 (3238년)
북메디아 서부에 위치한 로지냐드 요새가 파랑 기병대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었다. 로지냐드 원주민들의 대다수는 노예로 끌려가고 그 위치를 다른 종족들이 차지하게 된다.
로지냐드 요새의 몰락으로 파랑 기병대의 북메디아 서부 공세는 사실상 끝이 나게 된다.
보르몬의 학살 (3239년)
보르몬 공국은 이들에게 저항하다가 결국 항복했지만, 파랑 기병대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부토니에 일곱도시의 탈출 (3243~3244년)
사사란 시와 킬로브 시의 참화를 지켜본 부토니에 일곱도시는 파랑 기병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도시를 버리고 탈출할 것을 결의하였다.[10]
이들은 3243년부터 파랑 기병대의 동향을 파악하고, 필요한 생활기반과 물자를 챙겨 북메디아를 벗어날 것을 결정한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해들은 파랑 기병대는 진격의 방향을 바꾸어 부토니에 일곱도시를 공격하게 되었으며, 3244년 1월 칸노도브가 함락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 놓였음에도 불구하고, 탈출은 지연되기를 반복한다. 결국, 그들은 파랑 기병대의 선봉부대에게 침공당했으며, 75척의 탈출선중 43척만이 온전히 탈출하게 된다.[11] 이들은 메티샤의 해양을 떠돌다가 남메디아 라인드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떠나지 못한 피난민들은 대부분 파랑 기병대의 압제로 북메디아전역으로 흩어졌으며, 이들은 살던 곳을 잃어버리고 북메디아 곳곳에 분포하게 된다.[12][13][14]
절정의 파도(3249년~3274년)
제 7대 사데나의 시기는 남쪽으로의 확장이 가장 잘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이들은 북메디아의 나머지 지역들에 대하여 공세를 중단하고,[15] 북메디아 남부 및 남메디아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프라인 진압(3249년)
북메디아 북부 프라인 도시연합이 파랑기병대에 바치는 공물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결과로 프라인어의 구사자는 모두 사라지게 된다.
엔니디 분쇄(3251~3252년)
니릴 포위전(3254년~3256년)
북메디아 남부의 도시국가 니릴은 파랑 기병대의 악명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1년 반에 걸친 포위전 끝에 모두 사살되어, 무지의 업을 짊어졌다.
체르몬의 역진(3255년)
코르 전역(3255~3276년)
제 1차 메디아 해협 공세(3255년~3260년)
스레니아일 항구 함락(3257년)
파랑 기병대는 코르 지역의 정복과 남메디아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 확보를 위해 남메디아 북부의 스레니아일 항구를 정복한다. 이 사건은 코르의 보급로에 심각한 차질을 불러왔으며, 제 4차 메디아 해협 공세의 일부인 하센 해전에서 타코뤼 지역이 승리하기 전까지 메디아 지협의 통제권이 파랑 기병대에게 넘어가게 된다.
제 2차 메디아 해협 공세(3261년~3265년)
카르난 해전(3266년)
메디아 지협의 통제권을 놓고 벌어진 첫번째 해전이다. 남메디아의 카르난 항구 근처에서 벌어졌기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이 전쟁에서 코르는 압도적으로 패배하게 되고, 이후의 해협 공세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16]
제 3차 메디아 해협 공세(3267~3271년)
종장(3272년~3279년)
제 4차 메디아 해협 공세(3272년~3276년)
3272년, 앞으로의 모든 역사의 흐름을 결정지을 제 4차 메디아 해협 공세가 시작된다.
와해
3272년부터 시작되어 3276년에 종료된 제 4차 메디아 해협 공세는 제 7대 사데나가 사망함으로써 파랑 기병대의 패배로 끝나게 된다. 구심점을 잃은 파랑 기병대는 3년만에 북메디아 전역에서 와해되기 시작한다.
이들의 종말은 좋지 못했다. 자신들이 공격했던 모든 국가들에게 잔인할 정도의 보복 공격을 받아 대부분이 사라지고 유민들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학살당하거나 각국의 노예로 팔려나가게 된다.
제 7대 사데나를 죽여 전세를 극적으로 바꾼 영웅은 밀리토호스 타코뤼 국가연맹을 설립하게 된다.
이들의 영향
북메디아 대륙에 미친 이들의 영향은 참혹했다. 이들의 시기 3500만~7000만의 인구가 희생되고, 수많은 국가가 무너져 세력의 균형이 어지러졌다. 파랑 기병대가 몰락한 이후로도 이 힘의 행방이 정리되지 않아 추가적인 희생과 전쟁을 불러왔다.
대파랑의 종결 이후, 이들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타코뤼 지방의 옐 타데페이스들은 메디아 해협의 패권을 잡는 국가연합인 밀리토호스 타코뤼 국가연합을 구성하게 된다. 밀리토호스 타코뤼 국가연맹은 과거 타코뤼의 침공군이었던 파랑인 잔존부대의 자발적 복속을 받아낸다. 이렇게 하여, 남메디아에 남은 파랑인의 후예는 밀리토호스 타코뤼 국가연맹 산하 세멘티 공국을 이루게 된다.
밀리토호스 타코뤼 국가연맹 현재 북메디아의 지역강국인 밀리토호스 타코뤼 왕국의 전신이 된다.
파랑 기병대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해낸 구오와 엘레르디 왕국은 북메디아 북부 국가의 수호자로 칭해졌으며, 주변 국가들이 이들을 구원자라고 부르며 따르게 된다.[17] 다만, 엘레르디 왕국은 이후에 일어날 레네 강철늑대 기사단의 피신을 도와줘서 반감을 사기도 했다.
3243~3247년에 이루어진 부토니에 일곱도시의 탈출은 비록 완전한 성공으로 끝나지 못했으나, 43척의 배가 악테시오브론트의 항구에서 탈출에 성공한다. 이들 피난민은, 몇개월에 걸친 항해의 끝에 남메디아 라인드에 정착, 몇번의 국가 교체를 거쳐 현재의 바란이 된다.
파랑 기병대의 몰락 소식을 들은 파랑 기병대 소속 자텐다 황금 기사단은 북메디아 서부 지역에 무력으로 정착, 스스로를 사데나의 정통적 후계국으로 칭하며 자텐다 황금전단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전쟁중심주의적인 과거의 전통을 버리고 주변국가와 좋은 외교를 하는 것을 선택하였으며, 현재 북메디아 서부의 부유한 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북부로 탈출한 파랑 기병대 소속 레네 강철늑대 기사단은 자신들이 공격했던 엘레르디 왕국의 도움으로 복수로부터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안전하게 레에헤-아르세른 산맥을 넘었으며, 현재의 이렘나 철랑대의 모태가 되는 이렘나 기사단국이 된다.[18] 이렘나 기사단국은 안전한 위치로 피신하였다. 이것은 국가 설립 초기에 타 국가로부터의 침공을 받은 자텐다 황금전단이나 세멘티 공국과는 달랐다. 이런 환경은 이렘나 기사단국의 문화적인 발전을 가로막았으며, 현재의 전쟁중심적, 인명경시적인 문화로 이어지게 된다.[19]
파랑 기병대의 출신지였던 레나루 호수는 원래 지도에서도 보일만큼 거대한 호수였으나, 대파랑의 종결 이후 파랑 기병대의 만행에 분노한 피지배민들이 매워버려 지금으로써는 위치도 알 수 없다고 한다.
후신국
기타
- ↑ 2024년 12월 22일 10시 22분 38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 ↑ 이것은 다른 시기에서도 같았지만, 이 시기의 최후 통첩은 많은 문명을 공포에 떨게 했다.
- ↑ 이때 엘레르디 왕국을 침공한 레네 강철늑대 분견대는 이루 이렘나 철랑대의 모태가 되는 이렘나 기사단국이 된다.
- ↑ 북방의 오팔투와 엘레르디 문명이 있으나, 이들은 다른 문명과 형성양상이 다르므로 예외로 취급한다.
- ↑ 세이안 제국 및 봉신 도시인 라쿠텐보츠 도시연합의 총합. 세이안 제국 단일로써는 전쟁 직전 1300만명으로 추정된다.
- ↑ 북부 침공군 소속 만투르 백화 기사단, 북부 침공군 소속 아쉴쿠르 세구름 기병대
- ↑ 파랑 기병대는 다른 전투와 비슷하게 빠른 기동력으로 승부를 보려 했으나 오팔투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 ↑ 이 여파로 만투르 백화 기사단이 해체된다.
- ↑ 엘로드오브, 칸노도브, 탄노브, 악테시오브론트, 실다시소브론트, 레토브, 가실로브
- ↑ 엘로드오브 4척, 칸노도브 1척, 탄노브 3척, 악테시오브론트 14척, 실다시소브론트 11척, 레토브 7척, 가실로브 3척
- ↑ 4620년 기점으로, 부토니에의 7도시중 부토니에 계통이 주류를 차지하는 도시는 엘로드오브와 실다시소브론트밖에 없다.
- ↑ 4617년, 바란 왕국은 이 시절 잃어버린 일곱도시가 있는 악실루 만을 재개척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며,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었다.
- ↑ 부토니에 계통의 7개 도시는 바란 치하에서 재바란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 ↑ 정확하게는 남은 문명들은 전략적인 가치가 없거나, 구오나 엘레르디 왕국처럼 반격을 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 ↑ 기록에 따르면, 물에 뜰 수 있는 모양이 모두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 ↑ 이 시기, 구오는 영토의 확장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구오 영토와 다르게 인구 부양력이 높은 하치지방을 편입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 ↑ 이들은 자텐다 황금전단과 세멘티 공국과는 다르게 바샨니인이라는 토착 조인족과 혼혈이 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이렘나인은 자텐다인, 세멘티인과 다르게 수생정령의 신체적인 특징보다는 셰르계열 조인족인 바샨니인의 특징이 강한 편이다.
- ↑ 다만, 이것은 이렘나인들이 정착한 셰르반도가 타 지역에 비해 생산성이 극도로 부족한 땅이었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 ↑ 멸망 후 AR 그룹으로 승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