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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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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한카 교회국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

상고 : 레니스카 시대

한카 교회국의 조상 민족인 에아츠밴(芽子本 (Qeazbeen)), 다른 말로 엘프족은 레니스카 어딘가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통치자들이나 왕조들에 대해 서로 부르는 명칭은 다르지만, 대엔지 제국의 역사와 공유한다. 외국에서는 "엘프 왕국"으로 칭한다. 아래는 십사처경 윤회편에 기록된 대로 한카에서 부르는 명칭을 기준으로 한다. 엔지에서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대엔지 제국/역사 참조.

엘프족의 기원

엘프족의 기원은 남레니스카의 어딘가로 추정되었으나, 최근 엔지에서의 고고학 발굴 성과들은 이를 부정하는 중이다.

에아 왕조

에아 왕조(夏王朝 (Heā Waŋdhyaw))는 아직 유적이 발굴되지 않아 전설 속의 왕조로 남아 있다.

시앙 왕조

시앙 왕조(商王朝 (Shaŋ Waŋdhyaw))는 본래 떼이까욱 까우신즈이(帝嚳高辛氏 (Deycauc Causinzhī))를 시조로 하는 조그마한 성읍국가로 에아 왕조의 제후국이었다. 에아 왕조의 폭군이었던 기에투앙 ẞ. 리꾸에이(桀王姒夏履癸 (Gietuaŋ Szīheā Līcuey))가 즉위하여 온갖 악행을 일삼자, 시앙 왕조의 탕우앙 쯜리 타이위트(湯王子履太乙 (Taŋuaŋ Zlī Tayiut))가 에아 왕조를 멸망시키고 엘프족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시앙 왕조는 피지배민들에 대한 정책이 상당히 잔혹하였다. 이는 잦은 반란을 불렀고, 한카력 2232년 시앙 왕조의 마지막 왕인 떼이신(帝辛 (Deysin)) 때 서쪽의 백작 치앙( (Chaŋ))의 반란에 의하여 멸망하고 만다.

현재 시앙 왕조의 마지막 수도인 인히우(殷墟 (Yīnxiw)) 유적지가 대엔지 제국의 지야미레 부에서 발굴되었다.

고대 : 왕정 시대

쪠우 왕조

치앙은 시앙 왕조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고, 그 아들인 단느( (Dann))와 반( (Vān)) 사이에서 왕위 다툼이 발생한다. 왕위 다툼에서 패배한 반은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서쪽으로 떠난다. 이 때 수많은 무리들이 바다를 건넜다고 해서 반의 세력을 빠엑쩨이(百濟 (Baeczey))라고 불렀는데, 이는 현대까지도 엔지 등의 주변국과 한카 교회국 내부에서 자신들의 국가를 부르는 명칭의 기원이다.

한카력 2238년, 동아트리아 해안에 도착한 반의 세력은 새로운 나라인 쪠우 왕조(周王朝 (Jew Waŋdhyaw))를 선포하고 카우키엥(鎬京 (Caucieŋ))에 도읍을 정했다. 이곳이 바로 현재의 남키옹즈(南京市 (Namcieŋzhī)) 코키오뉴(鎬京區 (Caucieŋew))이다.

공화 시대

춘추 시대

쪠우 왕조가 복귀하면서 공화 시대는 끝이 났다. 하지만 이전에 비하여 쪠우 왕조의 권위는 크게 떨어져 있었다.

전국 시대

삼국 시대

혼느( (Xonn)) · 치우( (Chu)) · 떼이( (Dey)) 세 왕조가 대치하였다.

중세 : 황정 시대

혼느 황조

한카력 4641년,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혼느 왕조(漢王朝 (Xonn Waŋdhyaw))의 리에우짜엥(劉正 (Lieujaeŋ))에 의하여 전국시대가 마무리되었다. 리에우짜엥은 황제라는 호칭을 도입했고, 이는 그를 혼느 시우앙떼이(漢始皇帝 (Xonn Shīhuaŋdey))라 불리게 한다. 혼느 시우앙떼이는 한카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명군이자 성군이었고, 이후 황조들의 기틀을 놓게 된다. 도읍은 당곤(長安 (Dhaŋon))이었는데, 이곳이 바로 현재의 남키옹즈(南京市 (Namcieŋzhī)) 장가뉴(長安區 (Dhaŋonew))이다.

무신 정권

계속된 상황 정치로 인한 황권의 약화와 무신들에 대한 차별대우가 쿠데타를 불렀다. 이후 혼느 황조의 황제들은 무신들의 권위를 세워주기 위한 허수아비로 전락한다.

후 전국 시대

디오그띠옥(董卓 (Dhyogdyoc))이 황제를 칭한 5831년이나, 호느 황조의 마지막 황제인 리에우지안(劉禪 (Lieudjan))이 죽은 한카력 5912년을 기점으로 잡는다. 각지에서 황제를 칭하는데다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유목민들의 침공까지 겹쳐 이 때는 한카의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대로 꼽힌다.

당 황조

한카력 6479년, 후 전국 시대에서 천하를 재통일한 신드랑꿍 리이쥐안(信長公李泉 (Sinndhyaŋcuŋ Līdziuan))에 의해 당 황조(唐皇朝 (Dhaŋ Huaŋdhyaw))가 시작된다. 도읍은 온드리으(安治 (Ondhyih))였는데, 이곳이 바로 현재의 남키옹즈(南京市 (Namcieŋzhī)) 안지유(安治區 (Ondhyihew))이다.

후 삼국 시대

숭 황조

한카력 7801년 후삼국을 통일한 숭 황조(宋皇朝 (Suŋ Huaŋdhaw))는 굉장한 번영을 이루었다. 고전 물리학 법칙의 확립과 최초의 증기기관의 발명에 의한 산업혁명의 기반이 이때 닦아졌다. 수도는 카이퐁(開封 (Kaifoŋ))이였는데, 이곳이 바로 현재의 한하이즈(寒海市 (Honxaezhī)) 카이파뉴(開封區 (Kaifoŋew))이다.

남북조 시대

한카력 8348년 유목민 황조인 킴 황조(金皇朝 (Cim Huaŋdhaw))에 의해 숭 황조는 오시우에(河水 (Hoshue)) 북쪽으로 쫓겨나 연명하는 신세가 된다. 이때를 벡숭(北宋 (Becsuŋ))이라고 한다. 수도는 리몬(臨安 (Limon))이었는데, 이곳이 바로 현재의 부흐키옹즈(北京市 (Beccieŋzhī)) 리마뉴(臨安區 (Limonew))이다. 리몬으로 하여금, 이후에 부흐키옹이 수도가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황실의 권위 추락으로 각지에서 반란이 속출하였다.

한카력 8414년 마흐트레이에 의해 십사처교가 성립한 것도 이 때이다.

위안 황조

한카력 8791년 고 뤼미에르계 유목민들인 위안 황조(元皇朝 (Qiuan Huaŋdhaw))에 의해 벡숭까지 멸망하면서 남북조 시대가 끝나게 된다. 위안 황조는 잠재적 위험 요소라 판단되는 십사처교에 잔혹한 탄압을 가했다.

킴 황조에 이어 위안 황조까지 연달아서 유목민 황조가 들어서자 한카어의 음운 체계는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현재의 한자음이 완성되었다.

근대 : 교회정 시대

명 황조

한카력 9119년, '태평천국'을 내세운 십사처교의 반란으로 인해 위안 황조가 멸망하고,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황제가 선출되는 교회정인 밍 황조(明皇朝 (Miŋ Huaŋdhaw))가 들어섰다. 한카 교회국이 근대 국가 반열에 들어서게 한 체제이기도 하다.

이 때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진행되었으며, 기술 수준은 TL7까지 올라갔다. 주변국들과 비교되는 독보적인 기술 발전에 의해, 한카인들은 자신들 이외에는 문명국이 없다고 생각하고 외부와의 교류가 점차 단절, 쇄국화되게 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하였었으나, 점차 한카 사회가 저출산 고령화를 겪으며, 천년 이상 계속되는 경제 침체에 따라 기업들이 점차 국유화되어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되고 만다.

문호 개방

한카력 12761년부터 12827년까지 집권한 웬라이 3세 교황은, 초저출산에 따른 초고령화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문호 개방과 이민 수용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는 한카 내부에서 큰 반발을 불러왔고, 한 차례의 내전과 부흐키옹 대해일을 겪고 나서야 제대로 대량의 이민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한카력 13150년을 전후하여, 한카 교회국은 주 민족인 한카인들 외에도 여러 민족들이 공존하는 다민족 사회인 것에 더해,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TL8의 현대 국가가 되었다.

분단

공포의 새천년남극해 전쟁의 여파가 이어져, 이윽고 舊 한하이 대교구 지역에서 일어난 아나이 공화국자소크력 5070년 5월 7일에 독립해 떨어져 나깟다.

연표

한카 교회국의 역사
한카력 자소크력 사건
고대
0년 기원전 8192년 5월 22일 한카 공동체의 신화상의 건국일
중세
8414년 222년 십사처교의 성립
근대
12787년 4596년 1월 17일 피페레 제국의 탐험대가 동쪽으로 한카 산맥을 넘어 한카 교회국을 발견
12793년 4602년 3월 13일 피페레 제국과 수교, 부흐키옹 조약 체결
12799년 4608년 1월 10일 자소크 철학단과 수교
12827년 4635년 4월 13일 한카 내전 시작
12829년 4637년 1월 13일 한카 내전 종료
12831년 4639년 4월 7일 란카헤 연방, 제리드발로 공화국, 앙둔 제국과 수교
12834년 4641년 6월 22일 부흐키옹 대해일, 한하이로 임시정부 이전
12900년 4707년 8월 18일 부흐키옹으로의 중앙교회 재천도
12901년 4708년 대개방 : 사트의 나머지 국가들과 수교
12909년 4728년 3월 20일 끌레르 조약으로 서남부 국경 획정, 산서 지방 영토 획득

역대교황

성명 재위
한카력 사력
明36 웬라이 3세
(原來三世 (Qiuanlai Samshey))
12761. 02. 06 ~
12827. 03. 19
4569. 06. 06 ~
4635. 07. 19
明37 카람 6세
(佳藍六世 (Cealam Liucshey))
12827. 03. 19 ~
12968. 08. 06
4635. 07. 19 ~
4776. 04. 06
明38 마일라 8세
(買羅八世 (Maelho Batshey))
12968. 08. 06 ~
13024. 05. 02
4776. 04. 06 ~
4832. 01. 02
明39 아르제스 2세
(貳節二世 (Errziet Errshey))
13024. 05. 02 ~
13225. 01. 03
4832. 01. 02 ~
5033. 05. 03
明40 파바유 6세
(破敗宇六世 (Pohbhayyū Liucshey))
13225. 01. 03 ~
현직
5033. 05. 03 ~
현직

도보게

각주

  1. 2024년 12월 21일 15시 43분 52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