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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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아르토이트령 무후니아는 아트리아에 존재하는 아르토이트의 속령이다. 주노데 해협 쟁탈전 도중인 5509년 8월 17일 멸망하였다.
역사
무후니아 범인류회의
4930년, 아르토이트 출신의 이민 2세대인 '한스 키스(Hans Kino)'가 범인류주의 정당 '무후니아 범인류회의'를 창설했다. 이는 아르토이트의 아르토이트 200회 신년회의 영향을 받은 무후니아인들이 설립한 정당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무후니아 해방돌격대'라는 준군사조직을 형성하여 당의 교세를 확장하는데 이용하였다.
4933년에는 무후니아 공화국의 헌법재판소에서 무후니아 범인류회의가 '불손한 이념을 가지고 대중을 선동하는 사상범의 모임'이며, '국가 전복을 꿈꾸는 공화국의 적'이라는 이유로 판단되어 강제 해산조치되었다. 이에 반발한 무후니아 범인류회의 당원들은 정말로 사병조직을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이는 무후니아 내전으로 이어진다.
무후니아 내전
4936년 8월 12일, 한스 키노를 중심으로, 무후니아 범인류회의는 무후니아 남부를 거점으로 하여 무후니아 해방돌격대를 이용한 쿠데타를 일으켰다. 한스 키노는 무후니아 범인류회의의 후속정당이라며 '무후니아 인민해방전선'의 탄생을 선포했다. 단 한 가지 무후니아 공화국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정말로 범인류주의에 감화된 무후니아 인민들이 상당수 존재했다는 점이다. 무후니아 인민공화국의 영향으로 인해 국제주의적 이념은 무후니아 전반적으로 널리 퍼져있었으며, 범인류주의는 당시의 향수를 자극했다. 무후니아 인민들의 상당한 지지를 기반으로 범인류회의는 수도를 향해 진격했으나, 군부를 완벽히 장악하지 못한 이들은 단기에 내전을 끝내지 못하고 질질 끌게 된다. 그러나 4937년 3월 10일, 아르토이트 제국이 '범인류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무후니아 내전에 개입하였다. 아르토이트 제국의 정예부대는 무후니아 북부로 상륙하여 무후니아 공화국을 밀어붙였고, 결국 4937년 4월 1일에 수도를 점령하여 무후니아 인민해방전선이 내전에서 승리하게 된다.
무후니아의 아르토이트 가입투표
4938년에 한스 키노를 비롯한 무후니아 인민해방전선의 당원들은 독자국가로서는 범인류주의의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아르토이트의 일원이 되는 방안을 생각해낸다. 지난 내전에서 본 아르토이트는 무후니아가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도달한 국가로 보인 것이다. 4938년 4월 10일, 무후니아 인민해방전선은 아르토이트 제국으로의 합병을 주제로 한 국민투표를 열었고, 찬성 52% 반대 46% 기권 2%로 아슬아슬하게 가결되었다. 무후니아는 하인리히 2세에게 제국의 새로운 영토로 편입해달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게 된다.
아르토이트령 무후니아
4939년 1월 1일, 아르토이트 제국은 무후니아 공화국을 아르토이트령 무후니아로 개편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무후니아는 이후 아르토이트의 전진기지로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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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2024년 12월 21일 17시 15분 45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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