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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00년대 신세이 왕국 군벌시대]] == | == [[5200년대 신세이 왕국 군벌시대]] == | ||
5200년대 신세이 왕국 곳곳에서 봉기한 군벌들의 전쟁이 만연했던 시대. | 5200년대 신세이 왕국 곳곳에서 봉기한 군벌들의 전쟁이 만연했던 시대. | ||
== 송산군벌의 부활, 하쿠에이(鶴營)의 철권통치 == | |||
육각연합의 해체 후 하이슈의 아들인 하이슈 하쿠에이가 송산군벌을 경시에서 재건립한다. 이후 여러 관국과 군벌을 격파하고 중경에서 새로이 신세이 왕국을 건국한다. 미야테츠가의 방계인 하야다테(燕芳)가의 하야다테 미즈유키하나노가쿠(燕芳 水雪花之珏){신영(新英)}가 왕위에 오르지만 하쿠에이는 스스로를 대리청정자라 부르며 신세이도 전역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다. | |||
== 내부의 불안감을 외부로 돌려라 == | |||
하쿠에이에게 반발하는 시위나 군사무력충돌은 갈 수록 증가해갔다. 게다가 하쿠에이의 세력인 마야노코(寅街)계 군단이 하쿠에이에게 반역해 들고 일어났고 하쿠에이는 친위대로 겨우겨우 진압에 성공했지만 언제 다시 칼날이 자신의 목을 노릴지 모를 상황이었다. | |||
이에 하쿠에이는 전쟁을 통해 지지세력을 결집하려 노력했다. |
2023년 7월 2일 (일) 22:12 판
개요
신세이 왕국의 역사를 다룬 문서
아가와-루 시대
1000년대,신세이는 아가와(像涯) 세력과 루(爲) 세력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 중 아가와 세력의 에타가마 에도바쿠마가 루를 통합하여 남부에 에타가마(閣上)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각 지역의 권력가들이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우며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에타가마 전국시대
남부는 에타가마가 중앙집권을 채택해 다른 국가가 탄생하지 않았지만 북부와 중부는 여러 국가가 난립했다.북부에서는 이시가츠(柳寒)가 야타와(岸涯)와 연합하여 사이테와(凉涯)를 건국했다.중부에서는 헤세시테(煥河)가 중동부,중서부에 노이카시(雷際)현과 아타타가(泉雨)현을 설치하며 느슨한 중앙집권을 채택했다.
에타가마는 노이카시와 연합해 헤세시테를 멸망시켜 현재의 수도인 큐우시를 점령한다.(이 당시는 슈토(中都)라 불렸다.)
아타타가현은 헤세시테가 멸망함으로서 독립하려했지만 에타가마가 아타타가에게 합병을 요구하며 에타가마가 신세이의 중남부를 점령한다.
삼국시대
북부의 사이테와는 일찍이 분열해 이시가츠와 야타와로 나뉘었고 에타가마는 중남부를 전부 점령한 뒤 야타와와 연합한다.
이시가츠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는데,이 상황을 외교술로 극복한다.야타와에게 고토수복이라는 명분으로 에타가마를 침공하자고 제안하고 에타가마에게는 야타와가 배신할 것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에,에타가마는 야타와를 침공했고 야타와가 멸망할 때 즈음 이시가츠가 야타와측으로 참전하며 에타가마는 멸망한다.
야타와는 이시가츠에게 휘둘리는 괴뢰국일 뿐이었고 결국 이시가츠에게 합병된다.
이시가츠 시대
이시가츠는 각 지방에 현을 설치해 다스리게 하는 군현제를 채택했다.
이 때 현대의 지명 대부분이 지어졌다.
나라는 부강해지고 인구도 증가할 때 즈음 이시가츠의 대가 끊기는 사태가 발생한다.
남북 시대
이시가츠 시대의 마지막 왕이었던 이시가츠 카토베라시의 양자라 주장하는 남이시가츠와
카토베라시의 아버지던 에다테도의 동생의 손자라 주장하는 북이시가츠가 대립한다.
남이시가츠는 큐우시를 내세우며 정통성을 입증했고,북이시가츠는 정통성과 혈족 면에서 남이시가츠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이에,북이시가츠는 이시가츠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왕조를 열었고 그것이 테츠카야(閑株)왕조다.
남북조 시대
남북시대와 다른 시대로 이 시대에서는 이시가츠와 테츠카야 왕조가 대립한다.
이시가츠는 자신들의 고토수복을 목적으로 테츠카야에 선전포고했고 테츠카야도 물러서지 않았다.
초반에는 이시가츠가 테츠카야의 수도를 점령하는 등 선전했으나 후반에 들어 이시가츠 군 내부의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고,겨울이 찾아오면서 전황이 뒤집혔다.테츠카야는 수도를 탈환하고 이시가츠의 수도로 진격했다.이시가츠의 자존심이던 큐우시도 테츠카야의 군대에 무력히 밟혔고 결국 이시가츠의 왕이 항복하며 전쟁은 막을 내린다.
전 테츠카야 시대
前 테츠카야는 이시가츠 시대의 거의 모든 것을 답습했으며 신하도 골고루 등용하는 등 통합적인 면모를 보였다.이에,테츠카야에 반대하던 사람들도 점차 돌아서게 되었다.
하지만,테츠카야 중기에 들어서자 신하들이 서로 편을 갈라 경쟁하는 붕당정치가 판을 쳤고 출신지,교육지에 따라 당이 나뉘었다.
결국 민생에 신경 쓰지 않고 서로의 사욕을 위해 정치를 하기 시작하며 테츠카야는 점점 망국의 길에 들어선다.
아자쿠와의 난
백성들의 삶은 점점 어려워졌다 이에,미야시테(雪河)현 이츠가마시(春竹)부의 아자쿠와가 난을 일으켰고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처음에는 이츠가마시 인근이었지만 미야시테현을 넘어 쿠에즈라(失屋)현까지 확산되었다. 결국 왕궁이 있는 에츠가야(幸街)현까지 퍼졌고 결국 왕이 교체된다.
후 테츠카야 시대
새로운 왕은 전 테츠가야 마지막 왕의 이종사촌이다.
전 테츠카야는 당정치가 성행했다면 후 테츠카야 때에는 텐한교 관련 인물들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후 테츠카야는 종교중심적 정책을 행하며 전 테츠카야와 마찬가지로 민생은 생각하지 않았고 각 지역의 세력가가 사병을 일으켜 또다시 전국시대가 시작됐다.
테츠카야 전국시대
테츠카야 전국시대는 수백개의 관(官)이 난립하며 가장 소규모의 관은 한 마을도 제대로 점령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수백개의 관은 시간이 흐르자 점차 통합되었고 크게 다섯 세력으로 나뉘는데 안타카와(抗板),류우지마(祥走),조우산타이(鐘山台),오카와즈라(發之屋),오누시사마(穩雉)로 이 중 시부쿠산타이는 새로이 문자를 받아들이고 얼마 지난 후 지어진 이름으로 유일이 독음으로 읽는다.
안타카와의 관주인 이이가타 테노시타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옆나라인 류우지마가 신세이의 통합을 명목으로 사실상 대리청정을 했고 안타카와는 류우지마에 통합되어 갔다.
조우산타이는 오카와즈라와 텐호우타이쿠(天皇擇) 전쟁 직후 연합하여 오누시사마의 수도를 격파하고 관주를 유폐시킨다.
류우지마는 텐호우타이쿠 동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안타카와 부흥세력을 경계했다.하지만 류우지마는 오누시사마의 부흥운동을 비밀리에 도우며 오누시사마가 텐타이우(天撑) 부흥운동을 벌이며 텐호우타이쿠 지역 곳곳에 군사력이 분산된다.
류우지마는 자신의 군력이 아닌 안타카와의 군력을 텐호우타이쿠에 출정시키며 안타카와와 류우지마의 연합에 대해 다시금 관민들에게 각인시켰다.
류우지마는 텐타이우 부흥운동이 벌어지지 않는 지역을 주로 공략하여 텐호우타이쿠에게 연락이 가지 않도록 하였고 텐호우타이쿠의 국토 2/3 가량이 점령당하며 비로소 그 실체가 알려졌다.
류우지마는 텐호우타이쿠와 텐타이우 부흥운동 세력에게 협상을 요청했고 그 협상이 토우이츠센(統一選) 협약이다.
토우이츠센 협약
토우이츠센 협약에서 오누시사마는 관에서 현으로 격하되었지만 독립했으며 텐호우타이쿠는 강제해산되어 조우산타이,오카와즈라로 나뉜다.
류우지마는 조우산타이에게서 큐우시를 점령하여 큐우시에서 스스로를 황국이라 칭한다.
류우지마 황국 시대
류우지마는 신세이 북서부(오누시사마와 조우산타이,오카와즈라의 자치현)을 제외한 모든 구역을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로 점령하고 있었고 타국과의 교섭도 활발히 하여 드디어 세계로 진출하나 싶었지만 류우지마 황국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이츠 쿠타라마(류우지마 황국 1대 황제인 이츠카에 파이츠의 사위)가 반란을 일으키며 남북으로 분단된다.
북사일국 - 남상주국
북부에는 사이츠가가 점령하고 있었고 남부에는 이츠카에가가 점령하고 있었다.
북국이 남국을 공격하여 전쟁이 시작되었고 상대적으로 전투적 능력이 높던 북국이 남국의 왕국에 입성하는 등 다양한 성과를 보여줬지만 남국의 압도적인 인구와 생산력,부양력에 전쟁이 장기전이 될 수록 북국에게 불리하게 흘러갔고 결국 북국의 수도인 이와테츠가 점령되며 남국이 다시금 신세이를 통일한다.
현대 혼란시대
상주국이 신세이를 통합했지만 여전히 각 지역에서는 사병을 일으켜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는 가문이 너무 많았고 명목상 상주국이 신세이를 통치하고 있다하고 실제로 상주국은 수도인 경시와 그 부근만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레니스카를 포함한 사트에서 일어난 팽창주의적 행보들에 신세이인들은 위협을 느꼈고 그 위협은 신세이인들의 통합을 불러온다.
신세이 왕국의 성립
신세이인들은 제대로된 통치능력을 상실한 상주국을 폐하고 남부에서 관국노릇을 하던 미야테츠가를 옹립하여 신세이 왕국이 건국된다.
5200년대 신세이 왕국 군벌시대
5200년대 신세이 왕국 곳곳에서 봉기한 군벌들의 전쟁이 만연했던 시대.
송산군벌의 부활, 하쿠에이(鶴營)의 철권통치
육각연합의 해체 후 하이슈의 아들인 하이슈 하쿠에이가 송산군벌을 경시에서 재건립한다. 이후 여러 관국과 군벌을 격파하고 중경에서 새로이 신세이 왕국을 건국한다. 미야테츠가의 방계인 하야다테(燕芳)가의 하야다테 미즈유키하나노가쿠(燕芳 水雪花之珏){신영(新英)}가 왕위에 오르지만 하쿠에이는 스스로를 대리청정자라 부르며 신세이도 전역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다.
내부의 불안감을 외부로 돌려라
하쿠에이에게 반발하는 시위나 군사무력충돌은 갈 수록 증가해갔다. 게다가 하쿠에이의 세력인 마야노코(寅街)계 군단이 하쿠에이에게 반역해 들고 일어났고 하쿠에이는 친위대로 겨우겨우 진압에 성공했지만 언제 다시 칼날이 자신의 목을 노릴지 모를 상황이었다.
이에 하쿠에이는 전쟁을 통해 지지세력을 결집하려 노력했다.
- ↑ 2024년 12월 22일 15시 36분 45초 기준. 미디어위키 표현식의 한계에 의해서 이 값은 정확하게 나타나기 힘들다. 정확한 값을 얻기 위해서는 사트/표준#Python 구현에서 설명하는 방법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 디스코드 서버에는 차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