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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조 · 규조어 (규조 문자) |
+ 이츨레게-규조 전쟁 戰之이而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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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노브 조약 당시의 국경선 | ||
날짜 | ||
5489년 6월 20일 – 5492년 2월 2일 | ||
장소 | ||
규조 봐트랴 지방, 규조 효아트랴 지방 | ||
원인 | ||
규조의 무리한 영토 확장, 이츨레게 왕국의 진출로 확보 야욕 | ||
교전국 | 이츨레게 왕국 | 규조 |
이츨레게 왕국 | 규조 | |
지원 세력 | ||
상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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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츨레게-규조 전쟁은 56세기에 이츨레게와 규조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전개
5489년 6월 20일, 이츨레게의 침공
5489년 6월 20일 새벽, 이츨레게는 규조의 효아트랴 평원 남동남쪽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침공해왔다. 침공해온 부대는 국경의 산지에서 스키를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와 민가를 점령했으며, 아주 빠르게 북서진해갔다.
5489년 6월 21일, 규조, 파병
5489년 6월 21일 아침, 규조의 해군과 육군은 효아트랴에 병력을 추가로 지원하기 위해 파병에 나섰다.
5489년 7월 6일, 이츨레게, 러프부에드 해 도달
이츨레게 육군은 5489년 7월 6일 낮, 러프부에드 해의 해안에 도달하여 러프부에드 해로 가는 해안선을 획득했다. 규조의 군사는 러프부에드 해의 군대에 힘을 쓰지 못하고 밀리고 있다.
5490년 6월 22일, 이츨레게, 봐트랴 평원 점령
5490년 6월 22일, 이츨레게의 육군은 봐트랴의 평원을 점령하였다고 밝혔다. 봐트랴 평원을 모두 점령하고 이츨레게는 효아트랴 지방으로 진출하려는 동세를 보여, 규조의 군사도 효아트랴 지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5491년 1월 22일, 이츨레게, 봐트랴 곶 점령
이츨레게는 봐트랴 곶의 남은 규조 영토를 모조리 점령하였다. 이로써 규조는 봐트랴 지방에 남은 영토가 하나도 없다.
5491년 3월 19일, 규조, 봐트랴 곶 탈환
5491년 3월 19일, 규조가 봐트랴 곶의 일부 지역을 탈환하였다. 이츨레게는 봐트랴 곶을 점령하고 전력을 모두 효아트랴 지방에 집중했는데, 이 빈 곳을 틈타 규조의 군대가 봐트랴 곶으로 진출하였다.
5491년 4월 2일, 규조, 이츨레게에 종전 제의
5491년 4월 2일, 규조는 이츨레게에 종전을 제의했으나 이츨레게는 종전 제의를 거부하고 전쟁을 계속해나갔다. 규조는 무조건적인 항복을 할 수 있으나, 일단 가능한 만큼 버티고 있다.
5491년 5월 9일, 이츨레게, 효아트랴 반도 점령
5491년 5월 9일, 이츨레게는 효아트랴 반도의 모든 해안선을 점령하였다. 이로써 규조는 효아트랴 반도에 남은 영토가 없다.
5492년 2월 2일, 뷰노브 조약
5492년 2월 2일, 규조 머뮘 지방의 뷰노브에서 전쟁을 완전히 끝낸다는 조약을 맺었다. 이로써 이츨레게-규조 전쟁이 완전히 끝나게 되었고, 이츨레게는 효아트랴 반도와 봐트랴 지방의 일부를 획득하게 되었다.
뷰노브 조약
뷰노브 조약은 이츨레게-규조 전쟁을 끝낼 때에 이츨레게와 규조 사이에서 한 조약이다.
언어 | 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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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조어 | 契公之前山 |
이 조약은 이 전쟁을 통해 효아트랴 반도와 봐트랴 평원 일부를 규조에서 이츨레게 영토로 한다는 내용과, 무조건적으로 전쟁을 종료하여 더 이상 무장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