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스타 연방 왕국에서 행했던 북동탐험을 다룬 문서

출발

에스라스타의 펜기주 북쪽도시 페쿠마아타에 본거지를 두고 출발하였다. 1차탐험대라 불리는 4명은 메데마까지의 거리를 4등분 시키고 각 4등분 된 곳에 거점을 세워 도로를 짓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1차 관문 이페르투스

1번째 거점까지의 크나큰 어려움은 없었으나,종종 불어오는 모래바람으로 주기적인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큰 일교차로 인해 감기에 걸리는 탐험대원들이 있었고 이로 인해,1명의 대원과 그 대원을 부축하기 위한 대원을 페쿠마아타로 귀환시켰다.

이페르투스 도달

이페르투스의 광경은 실로 놀라웠다. 그전까지 매섭게 몰아치던 모래바람은 온데간데 없이 맑고 화창한 날씨가 탐험대원을 반겨줬다. 하지만,식수를 공급할 곳이 없다는 것이 큰 흠이었지만 1번째 거점인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과이다. 이페르투스에서 2명의 대원을 기다렸고 이로 인해 계획이 조금 엇나갔다.

2차 관문 아카페토르야

2번째 거점까지는 울창한 숲이 우거져있었다. 호수나 강도 많아 식수 공급이 원활했으나,대부분의 물이 오염되어 마시기는 부적합했다. 이때부터 식수가 부족하기 시작했는데,이에 탐험대장은 2명의 대원을 1차 관문에 보내 3명의 추가인원과 식수를 요청했다.

아카페토르야 도달

아카페토르야는 숲속의 사원이라 부를 만큼 크고 높다란 산맥이 동서로 가로막혀 있었다. 아카페토르야는 식수나 식량 자급이 사실상 불가능해 1차 관문에서의 지원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고,이로 인해 새로운 계획을 세울 필요성이 생겼다.

페쿠마아타-이페르투스 도로 개통

탐험대가 이페르투스에 도달한지 약 3년 드이어 페쿠마아타-이페르투스 도로가 개통되었다. 현재는 관련자만 출입할 수 있지만 후에는 민간인도 출입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3차 관문 헤르세펜

3번째 거점까지는 다른 거점에 비해 매우 험준한 산맥과 무더운 날씨,그리고 매우 습해서 물이 더욱 많이 필요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인원이 3명 추가되어서 물이 더 필요하고 식량도 더 필요하다. 헤르세펜에 도착하면 2명 정도를 귀환시킬 예정이다.

첫번째 희생

헤르세펜에 도달하기 며칠 전부터 물이 없어 식수를 구하기 위해 계속 방향을 바꿨으나,끝내 물을 찾지 못했고 평소에도 연약하던 1차 탐험대원 한명이 탈수증으로 사망했다. 우리는 큰 나무를 베고 그 아래에 대원을 묻고 명복을 빌었다. 하루빨리 헤르세펜에 도착해야할 필요가 있다.

헤르세펜 도달

헤르세펜에는 큰 호수가 있었고,우리는 그곳에서 식수를 공급 받을 수 있었다. 이젠 식량이 문제였고,우린 남은 식량의 절반을 2명의 귀환 탐험대원에게 주고 추가 식량이 올 때까지 헤르세펜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이페르투스-아카페토르야 도로 개통

이젠 그리 큰 감흥은 없지만,그래도 식량 공급이 빨라질 것이란 장점은 존재했다. 대원 한명이 지금 생사의 고비를 넘고 있어서 하루 빨리 식량이 도착하기를 기원한다. 대략 한 도로 개통에 3년씩 걸리고 이번 도로는 계획 차질로 인해 4년이 걸렸다.

4차 관문 비에포네르

4번째 거점까지는 여태까지의 관문과는 차원이 달랐다. 큰 일교차,때때로 불어오는 모래폭풍,바다 근처라는 것이 느껴지는 뜨거운 바람까지 어느 하나 거를 타선 없이 우리의 목숨을 조여왔다. 비록 식량과 식수를 충분히 제공 받았음에도 쉬어가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식량,식수는 줄어만 갔다. 아마도 거점을 5개로 나눠야 할 듯하다.

비에포네르 도달

가장 기후가 안정적이고 식수가 많던 곳에 잠시 정착했다. 그리고 거점을 5개까지 나누자는 의견을 대원에게 알렸고,결과는 만장일치로 찬성이었다. 우리는 2명의 대원을 헤르세펜으로 추가로 귀환시켰고,나와 한명의 대원은 마지막 거점 베하니아로 걸어갔다.

아카페토르야-헤르세펜 도로 개통

이제 헤르세펜에서 대기하던 동료들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고, 나와 한명의 대원만이 베하니아로 걸어가고 있다.

5차 관문 베하니아

베하니아까지의 길은 순탄했다. 다만,종종 오는 폭우로 우리는 발걸음을 늦출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남은 식수를 아껴서 마셨고,식량은 자급으로 공급했다. 이제 베하니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베하니아 도달

베하니아에는 에스라스타에서 보지 못한 탁 트인 바다와 살구색 모래사장이 있었다. 나와 대원은 매우 기뻐하며 바다에 뛰어들었고,그곳에 거점을 설치한 후 왔던 길을 다시 돌아 비에포네르로 돌아갔다.

헤르세펜-비에포네르 도로 개통

우리가 비에포네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도로가 개통되어 있을 때였고, 우리는 무사히 헤르세펜까지 도착했다.(여기까지가 탐험대장 아르마나이 헬레세오노의 기록)

두번째 희생

(여기서부터는 아르마나이와 끝까지 함께한 에토마르카 아스멘의 기록)무사히 비에포네르까지 도착했지만 탐험대장은 과로로 쓰려졌고,헤르세펜의 한 복판에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1번째 희생자가 나왔던 그 나무에 대장을 묻었고,명복을 빌었다.

복귀 일지

다시 돌아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다. 단단히 쌓여진 길을 걷기만 했으면 되는 일이었으니, 그렇게 나는 다시 페쿠마아타에 도착했고,곧장 왕을 알현하러 에스티헤로 떠났다.

베하니아 일지

베하니아는 날씨가 온화하고 우리가 있었을 때 당시에는 구름 한점 끼지 않았다. 항구로 봐둔 장소는 양 옆에 언덕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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