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트.svg 상위 문서 : 란카헤 연방

고대(230~1058)

란카헤 고대 문화

란카헤의 역사는 자소크력 230년경 라바힌 문명의 발상과 함께 시작되었다. 라바힌 문명을 이룬 사람들은 북쪽 탄티샤의 크리상치아자소크 일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현 신네 란부세 지역, 특히 보시디나 섬을 중심으로 정착했으며, 해상 무역과 과학 기술의 발달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대부분의 도시가 보시디나 섬과 섬을 바라보는 반도의 해안에 위치해 있었으나, 대부분 화산 폭발 이후 파괴되고 북쪽 해안에 있던 도시만 일부 남게 되었다. 이 남은 도시들은 나중에 카오 왕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현재의 도스 비아나 시로 이어진다.

라바힌 문명이 멸망하기 전, 700년대에는 레니스카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카오 왕국의 킨미 란시케 지역에 정착했다. 이들은 윤게 문화를 형성하였는데, 카오 열대우림으로 인해 라바힌 문명과는 교류가 없거나 있더라도 영향을 크게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원대(1058~1785)

란카헤 원대 문화

1058년 대폭발로 라바힌 문명이 멸망하자, 그 후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대부분은 열대우림을 넘기보다는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으며, 이들은 현재의 민히 멘예보 지역에 정착했다. 안타깝게도 라바힌 문명의 기술이 대부분 소실되었으나 구전되는 지식을 바탕으로 노바 라바힌 문화가 탄생하였다. 화산폭발은 킨미 란시케 섬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지진과 해일 등으로 윤게라 시가 상당부분 파괴되고 윤게 문화의 중심지가 이동하여 노바 윤게라 시와 하 부루이고 시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1300년대 초반에는 트센 마라브에서 부사네데 사막을 건너온 사람들을 통해 피페레 제국과의 첫 접촉이 이루어졌으며, 사막이 대부분이라 경작지가 부족했던 민히 멘예보에서는 트센 마라브를 통해 페투치아와의 무역을 시작하였다.

근대(1785~4638)

란카헤 근대 국가

카오 왕국에 이어 1785년 7월 22일에 신시비히 란부세 연맹가 등장하여 중앙집권 국가들이 자리잡아갔고 쇠퇴했던 문명은 다시 발달했다. 이후 두 국가는 란카헤 지방을 주름잡는 양대 세력으로 등장해, 27세기까지는 한카 산맥과 코메바 산맥을 경계로 수차례 충돌하며 경쟁을 벌였다. 신시비히 란부세 연맹은 기술력이 강했으나 인구 수가 부족했고, 카오 왕국은 인구는 많았으나 기술력이 부족해 상대편을 압도하지 못했다.

27세기 후반에 신시비히 란부세 연맹이 공화제로 변하며 연맹 부족들의 부족장들이 선출직으로 변했고, 이후 2714년 3월 15일 신시비히 란부세 공화국이 탄생했다. 공화국은 더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는 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카오 왕국과의 평화 협정을 추진했으며, 카오 왕국 또한 점점 벌어지는 기술 격차로 전쟁을 지속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기에 평화는 곧바로 이루어졌다. 이후 양국은 한카-코메바 산맥을 따라 국경선을 설정하고 신위 산 꼭대기 스카데지 호에서 게라 늪지대까지 이어지는 성벽을 건설했는데, 이 성벽이 스카데지 호 북쪽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추후 란카헤 연방에서의 경계선 문제로 이어진다.

36세기 후반에는 신시비히 란부세의 탐험가들이 한카 산맥을 넘기로 하고 비옥한 크랖토스 평원에 도달했는데, 이들은 살기좋은 환경을 놓치지 않고 공화국을 버리고 새로운 정착촌을 개발했다. 기술력을 이미 갖춘 탐험가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순식간에 규모가 불어났고 불과 70년 후, 3653년 3월 14일에 이들은 크랖토스 공화국을 건국했다. 이것은 3660년대 신시비히 란부세의 큰 정치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한때는 크랖토스 공화국을 침공해 점령하려고 계획하기도 했으나, 조공의 형식으로 곡물을 받는 것으로 양국 간의 관계가 정리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몇백년 간 엄청난 불만이 쌓이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46세기가 되자 드디어 이 조공 관계를 청산하고자 크랖토스 공화국에서 카오 왕국과 동맹해 신시비히 란부세를 공격하자는 여론이 일었고, 이를 알게 된 신시비히 란부세 측은 급히 조공을 더이상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카오 왕국과의 거래로 기술력을 전달해주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황한 신시비히 란부세 정부에서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그들이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이점인 외교 정보를 이용해, 사트에 있는 다른 국가들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며 통일된 세력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인구와 몇천년 간 터득한 기술력을 가진 카오 왕국은 사실 연방을 형성하지 않아도 무력 통일이 가능해 보였다. 연방을 형성하자는 의견은 결국 카오 왕국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카오 왕국은 평화로운 합방을 하기로 결정했고, 크랖토스 공화국의 비라게라에서 삼국 간에 비라게라 조약이 체결되었다.

현대(4638~)

비라게라 조약 체결 직전의 란카헤

사트.svg 자세한 내용은 란카헤 연방/역사/현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비라게라 조약의 체결로 란카헤 연방이 형성되었다. 이후 란카헤 연방은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더욱 급속히 성장하였으며, 최근에는 폐쇄적이었던 외교 정책이 변화하며 사트의 여러 국가들과 교류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