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탄디아 전쟁 xuny nute Tandia Fjunrijn(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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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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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5201년~5203년 | ||
장소 | ||
쇠예흐 대제국 본토 자소크 철학단 남부 올리뵈주 북탄디아해상 | ||
원인 | ||
쇠예흐 대제국의 북메디아안정화 밎 자소크 철학단 견제 | ||
교전국 | 가베 개혁군 | 연합군 |
쇠예흐 대제국 | 자소크 측 자소크 철학단[1] 시메타시스[2] 칼리만다리 측 칼라만다리 연방[3] | |
지원 세력 | ||
상세 정보 | ||
[ 펼치기 · 접기 ] |
지휘관 | 다비크 메르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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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302만명 | -만명 -만명 |
피해 규모 | 270만명 | 62만명 |
민간인 사상자 |
240만명 희생 | 11만명 희생 |
결과 | ||
쇠예흐 대제국 항복 사흐러이스탄 부족연맹과 자텐다 황금전단의 일부 재건 | ||
영향 | ||
언어 | 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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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베어 | nute Tandia Fjunrijn |
야마토어 | 北タンヂャ戦争 |
한국어 | 북탄디아 전쟁 |
영어 | North Tandia War |
일본어 | 北タンヂャ戦争 |
한문 | 北丹斗亞戰爭 |
안드로어 | qnrxkseldk wjswod |
메다어 | ;bx'fsudjf ltslra |
개요
5201년부터, 자소크 철학단을 쇠예흐 대제국이 침공한 사건이다.
전쟁 배경
쇠예흐 대제국은 북메디아 서부를 점령하였으나 자텐다와 사흐러이스탄 세력을 완전 제압하는데에는 실패하였다. 쇠예흐 대제국은 이 원인을 두 국가를 지원하는 자소크 철학단의 존재로 보고, 북메디아의 해방 및 자소크 영향력 억제를 위해 자소크 철학단에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경과
결과
쇠예흐 대제국은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패배하였으며, 쇠예흐의 점령 하에 있던 자텐다와 사흐러이스탄의 저항운동이 거세지는 원인이 되었다.
영향
쇠예흐 측
반-쇠예흐 측
자소크 철학단
시메타시스
시메타시스는 표면상 자소크 철학단을 지원한다고 표방하였으나, 사실상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았다.
시메타시스는 5105년 UMG 합병 이후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왔다. 시메타시스는 고립기를 대비하기 위해 자텐다 및 중립국들과의 관계 및 무역량 증대와 같은 대비를 하였으나, 제 1차 북메디아 전쟁으로 인해 자텐다 황금전단이 파괴되면서 시메타시스의 상황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악화되면서 시메타시스의 사회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났다.
결국 5218년 6월 6일 일어난 딜렌 엘리트 광산 마찰을 통해 쌓여왔던 사회문제가 점화되면서, 동월 24일 시메타시스는 7개의 국가로 분리되게 된다.